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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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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16 21:24:30 수정 : 2015-03-16 23:4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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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표 무서워 대의명분 저버리는
정치 바꾸려면 엄마들처럼 나서야
국회의원은 임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라고 선서한다. 새누리당은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며 모든 정책의 입안과 실천에 있어 오로지 국민의 뜻에 따를 것임”을 국민과 약속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강령에서 “국민의 행복을 위해 겸손한 자세로 ‘새 정치의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기관 혹은 정당으로서 국가와 국민의 번영과 행복을 구현하는 신성한 책무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맹세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들은 그런 약속과 다짐을 지킬 때보다 지키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이익을 기꺼이 희생시키곤 한다.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 권력을 거머쥐기 위해 배신과 배반을 서슴지 않는다. 정치가 늘 국민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정치가 최고의 선이 아닌 필요악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정치는 찰리 채플린이 말한 인생과 비슷하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국회 부결 사태는 정치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줬다. 국회의원 정원 300명 중 42명이 반대하고 46명은 기권했다. 129명은 표결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의원 70% 이상이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간절한 소망을 거부했거나 무관심했다. 당당히 반대 입장을 밝힌 의원이 있었고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정당도 있었다. CCTV 설치가 보육교사의 인권을 침해하고 아동 학대를 예방하는 최선책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보육교사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해결하고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대하는 것이 근본 대책이라고 주장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우선은 급한 대로 부모들의 불안을 부분적으로나마 덜어주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가해질지도 모를 학대를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CCTV 설치라는 차선책이 필요하다. 엄마들을 더 뿔나게 한 것은 여야가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 손바닥처럼 뒤집은 것이다.

어린이집 원장들의 조직적인 로비가 있었다고 한다. 선거에서 뭉텅이로 몰려다닐 어린이집 표 눈치를 보느라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의원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4년짜리 비정규직’이라고 자조한다. 4년 임기직을 연장하기 위해 유권자보다 당 지도부에 충성하고 유권자가 아닌 이익단체와 손을 잡는다. 어느 전직 의원이 고백했듯이 200가지가 넘는 특권을 4년 내내 누리다 어느날 갑자기 모든 특권이 사라지고 ‘낙선 바로 다음 날 운전 비서가 없어 스마트폰 티머니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해 만원을 충전한 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신세가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특권 포기’를 수도 없이 약속해 놓고 막상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도 괜히 그런 것이 아니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급급해 대의와 명분을 저버리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게 그들이다. 전직의 설움을 맛보지 않으려면 어린이집 원장들과 끈끈한 유대를 과시하는 것쯤은 누워서 떡 먹기다. 제1 야당이 공무원만 빼고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는 것도 공무원 표를 의식한 혐의가 짙다.

필자는 얼마 전 이 지면에서 ‘무턱대고 1번 아니면 2번을 찍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정치권의 슈퍼 갑질을 멈추게 할 수 없다’고 썼다. 채플린의 말을 다시 빌리면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너무 적게 느낀다. 세상은 선의로만 나아지지 않는다. 그동안 셀 수도 없이 손가락 탓을 하는 시행착오를 겪을 만큼 겪었다. 세상을 바꾸는 일, 국민 행복을 증진시키는 일을 정치인들 손에만 맡겨두는 시대는 지나갔다. 건전한 시민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시대다. 영유아보육법 부결에 성난 엄마들이 낙선 운동에 나서기로 했듯이 시민들도 나서야 한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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