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은 물을 찾아서 헤맨다. |
며칠 후 칭짱열차에 올랐다. 1인용으로만 쓸 것 같은 작은 테이블과 여기에 걸맞은 작은 의자 네 개가 모여 있다. 내 자리는 창가 쪽이다. 맞은편에는 부부가 앉았고 내 옆에는 할아버지가 자리를 잡았다. 이틀 동안 가는 열차 안에서 직각으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여행하는 일이 쉽진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1등석 침대칸은 대부분 외국인이 차지하고, 앉아서 가는 좌석은 티베트 사람이 주로 이용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좌석 칸을 선택했다.
앞자리에 앉은 가족 중 아이의 빨간 볼이 인상적이다. |
푸른 하늘이 나왔을 때도 역시 황색만 존재했다. |
뿌연 하늘과 황색 산을 끝없이 지나갔다. |
메마른 산은 끝없이 펼쳐져 있고, 창밖 풍경은 그림처럼 보인다. |
지독한 고량주 냄새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기차 안에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으려면 밖에 나가봐야 한다. 기차가 어느 역에 정차했을 때 바깥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오니 그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화장실은 기차를 탄 지 몇 시간 만에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세면대에서 대충 씻기만 했다. 거칠어지는 얼굴 때문에 뭐라도 발라보려고 꺼낸 로션은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고도가 높아져 터지기 직전인 로션통처럼 내 배도 화장실에 못 간 탓에 부풀기만 했다. 테이블 한가득 쌓여가는 해바라기씨 껍데기도 이제 낯설지 않다. 모든 것이 다 불편했지만 참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티베트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보이는 앙상한 나뭇가지 속에도 생명은 흐르고 있다. |
한류다 뭐다 해서 시끌벅적한 요즘 여행 때마다 느끼는 건 문화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이다. 라싸에서 태어난 이 학생들은 베이징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고, 지금은 방학이라 집으로 가는 길이란다. 한국 드라마와 노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그녀들과 함께 한국 노래를 같이 부르며 시간을 보냈다.
탕구라역은 해발 5000m가 넘는 곳에 있다. |
그때 기차가 멈춰 섰고 티베트 학생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탕구라(唐古拉)라는 역이었다. 그곳 높이는 해발 5068m였다. 5000m가 넘는 높은 곳에서는 하늘과 닿은 느낌이 날까. 황색빛만 보던 세상에서 흐린 하늘이 아닌 짙푸른색 하늘을 볼 수 있으니 이곳이 하늘로 가는 기차역이 맞나 보다.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가 내가 느낄 수 있는 데시벨을 넘어섰다. 말로만 듣던 고산증이다. 사이렌 소리가 머리 안에서부터 울려 퍼져도 이 멋진 광경을 두고 지나칠 수 없었다.
몇가지 색으로만 된 세상을 끊임없이 지나갔다. |
반복되는 풍경이 지겹지 않은 이유는 끝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
라싸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술을 마셨다. 고산증으로 고생할 때 하지 말아야 할 규칙이 샤워와 술이라고 들었다. 고산증을 경험하면서 두 가지를 다 해버리고 나니 푹 잘 수 있었다. 따뜻한 물줄기의 고마움을 느끼고 침대에 누워서 잘 수 있다는 현실에 고마움을 느꼈다. 일상에서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던 작은 일들이 감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실 잠들면서도 심한 이명 현상과 두통으로 힘들었지만, 더 견디기 어려운 건 추위였다. 겨울에 티베트를 찾았으니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내일 아침 라싸에서 밝은 햇살을 마주할 상상을 하니 웃으며 잠들 수 있었다.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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