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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평화 불씨’ 살리기 진보·보수 없이 힘 보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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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17 21:04:04 수정 : 2015-04-17 22: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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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평화헌법 9조’ 노벨상 추천 주도 이부영 한일협정재협상 국민행동 대표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난 이부영(73) 한일협정재협상 국민행동 대표는 새 일을 시작하는 사람의 분주함과 활기참을 풍겼다. 숫자 하나까지 꼼꼼히 챙기는 데는 오랜 정치 경력의 노련함이 엿보였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부총재를 거쳐 열린우리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장을 지낸 25년차 노장은 이제 시민단체 대표로 한·일 관계 재정립을 위해 다시 뛰고 있다.

종전 70주년, 한·일 수교 50주년이 되는 2015년, 일본은 평화헌법 폐기를 선언하는 ‘아베담화’ 발표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한·일 관계는 다시 기로에 섰다. 이 대표는 그런 해에 정계를 은퇴하고 한·일 관계 전도사로 나섰다. 그는 지난 2월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1965년 한일협정 재협상과 일본 평화헌법 9조 노벨평화상 추천 운동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부영 한일협정재협상 국민행동 대표가 14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일본 평화헌법 9조 노벨평화상 추천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기자에게 건넨 이 대표의 첫 인사는 “이렇게 혼란한 시기에 이 느릿한 주제를 선택한 저의가 뭐냐”고 묻는 것이었다. 한때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그의 사무실은 단출했고 비서 한 명만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이런 걸 하는데 누가 좋다고 도와주겠냐”며 웃었다. 그는 거의 매일 이곳으로 출근한다.

2013년 일본의 36세 주부 다카스 나오미씨는 ‘내 아이가 우리 할아버지들처럼 전쟁에 끌려 나가 어딘지도 모르는 외국에 가서 죽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자발적인 평화헌법 9조 노벨평화상 추천 운동을 시작했다. 앞서 2004년부터 오에 겐자부로 등 양심적 지식인 9명이 모여 만든 ‘9조회’도 평화헌법 수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과 친분이 깊은 이 대표는 한국 내 원로 50인과 함께 ‘일본 평화헌법 9조 노벨평화상 추천 한국위원회’를 꾸렸다. 위원회는 이 9조회와 다카스씨를 2015년 노벨평화상 공동후보로 추천했다. 노벨평화상이 개인, 단체에 주어진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 대표의 그간 행적을 볼 때 ‘평화운동’은 낯설다. 국가보안법 폐지, 언론 개혁 등 현대사의 굵직한 논란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보안법, 남북문제, 언론 문제 등에는 이미 자리 잡은 후배들이 많다”며 “한·일 관계 재설정은 그간 노력을 하지 않았고 인기 품목도 아니다. 그래서 들어왔다”고 말했다.

“왜 일본 헌법에 노벨평화상을 타게 해 주냐는 주장도 있는 걸 안다. 우리 안의 반일 감정이 뿌리 깊다. 하지만 일본이 평화헌법을 포기하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될 경우 우리의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가장 피해를 볼 곳은 어디인가.” 이 대표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다. 그는 “평화헌법에 노벨평화상이 주어지면 아베 총리가 헌법을 쉽게 폐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일본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매년 벌이는 대미 로비 규모를 볼 때 지금 이 시간에도 아베 총리는 헌법 9조가 노벨 평화상을 타지 못하도록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경고했다. 또 “일본 언론과 지식인 사회도 점점 우경화되고 있는데, 그 끝이 뭔지 모른다”며 “핵무장까지 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일본 내부 층위가 점점 우파로 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 이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안의 단합’이다. 이 대표는 ‘건강한 보수’의 존재를 큰 자산으로 여긴다. 그는 “이 일에는 진보·보수, 여야 그리고 영호남 할 것 없이 우리 국민 전체가 참여해야 한다”며 “지난날 정치를 함께 했던 분들과 총리, 대법원장, 장관 지낸 분들 중 진보와 보수,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접촉했다”고 말했다.

정계 은퇴도 이 과정에서 결정했다. “내가 한발짝 떨어져 있는 것이 모두를 아우르기 좋았다”는 것이다. 한때 ‘철새’라고 비난받았던 그의 정치적 경력도 오히려 도움이 됐다. 그는 “진보세력은 한·일 관계에서 이해관계가 덜하지만, 보수세력은 미·일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그런 만큼 이분들이 분명한 입장을 취해줘야 한다. 이들의 역사적 소임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평화헌법 노벨평화상 추천 인사 명단에는 소설가 이문열씨와 이만섭, 박관용 전 국회의장,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등 보수 인사 상당수가 이름을 올렸다.

이 대표에게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국제정치에 시민운동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일본에서 힘겹게 평화를 위해 애쓰는 세력과 손잡는 일이야말로 동아시아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이들이 패배해 일본이 다시 평화와 민주주의를 주장하지 못하는 나라가 돼버릴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하겠느냐”며 “그들이 숨쉬고 얘기할 때 북돋아줘야 한다. 이들이 살아남으면 분명히 앞으로도 싸울 것이다. 그 불씨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70대 노장은 ‘꿈’이라는 단어를 썼다. “내 꿈이 허황되다고 보지 않는다. 식민지 시대, 남북분단을 겪고 그 경험을 통해 우리가 일본에도 손을 내밀 정도의 인식 수준이 된 것이다.” 이 대표는 꿈을 믿는 이유를 ‘오랜 경험’에서 찾았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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