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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꽃사태… 여울여울 붉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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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30 19:44:16 수정 : 2015-04-30 19: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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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활짝 핀 창녕 화왕산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爛漫)히 멧등마다, 그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恨)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진달래는 봄날 우리 산하에서 가장 친숙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하지만 여류시조시인 이영도가 시조 ‘진달래’에서 노래했듯 그 아름다움을 마냥 기쁘게 감상할 수만은 없다. 진달래가 우리 민초들을 너무나 닮아서다. 

화왕산은 우리 땅의 진달래 명소 중 가장 독특한 풍광을 지닌 곳이다. 억척스럽게 자란 진달래와 억새가 산을 감싸며 어우러지는 모습이 이채롭다.
척박한 땅에서도 피어나는 끈질긴 생명력과 수수한 듯 강렬한 붉은 빛깔은 우리 민족의 정한(情恨)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봄을 수놓는 수많은 꽃들이 피어나지만 한번쯤 진달래 가득한 곳을 찾게 되는 것은 그래서다. 붉은 기운이 완연한 산하에서 계절을 즐기는 대신에 봄과 함께 스러져간 사람들을 생각하며 완상하는 것이다.

봄의 정한을 느끼기 위해 찾은 곳은 경상남도 창녕의 화왕산이다. 전남 여수 영취산, 경남 창원 천주산, 경기 강화 고려산 등 전국적으로 이름난 진달래 명소가 많지만 이곳은 더욱 독특한 풍광으로 많은 이들의 발길을 끌어모은다. 늦가을의 정취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억새와 봄의 절정을 보여주는 진달래가 어우러진 풍경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왕산 산행에서는 능선을 따라 걸으며 진달래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화왕산 산행은 크게 자하곡매표소를 출발점으로 하는 코스와 옥천매표소를 출발점으로 하는 코스가 있는데, 이 중 자하곡 코스가 좀 더 빠르다. 정상까지 2시간 정도면 도달할 수 있다.
 
다만, 산세가 험하고 경사가 심한 편이므로 등산화 등 최소한의 장비는 챙기는 것이 좋다. 물론, 험준한 만큼 오르면서 만나는 산의 풍광은 매우 아름답다. 기암괴석이 만들어내는 수려한 산세가 산을 오르는 노고를 한층 덜어준다.

한참의 등산 끝에 마침내 만난 정상의 모습은 장관이다. 원래 화왕산은 화산이 폭발해 형성된 산지다. 정상이 다른 산들과는 달리 움푹 팬 분지 형태라 그곳이 오래전에는 불을 뿜던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분지를 둘러싸고 진달래가 화려하게 피었다. 봉우리를 둘러싸고 한쪽 사면은 붉은 진달래가, 또 한쪽 사면은 노란 억새가 만발한 형세다. 진달래와 억새, 이 두 가지를 제외한 다른 식물들은 찾기가 힘들다. 칼바람이 불고 물이 적은 산 정상의 환경 때문일 것이다. 늙고 병들면 꽃마저 피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진달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한을 가진 존재는 쉽게 스러지지 않기 때문일까. 진달래는 뿌리박은 땅이 아무리 척박해도, 또 자신이 늙고 병들었어도 어떻게든 환경에 적응해 끈질긴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끝내는 그 땅을 자신의 색깔로 물들인다. 그야말로 억척스러운 우리 민초들을 닮은 듯한 꽃과 풀이 가득한 산 정상의 풍광은 감탄과 숙연함을 동시에 갖게 하는 장관이다.
화왕산성 내부 억새길

화왕산성의 모습. 임진왜란 때 지금 모습으로 다시 축성됐다고 한다.

산 정상에서 만날 수 있는 억척스러움은 진달래와 억새뿐이 아니다. 화왕산 정상의 분지는 산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원래는 가야 것이었던 이곳은 이후 임진왜란 때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축성됐다고 전해진다.
화왕산성 내부의 연못 용지.

‘홍의장군’으로 유명한 의병장 곽재우의 이야기도 남아있다. 진달래를 닮은 민초들의 손길이 닿아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산성 안에서는 전쟁 중 필수적인 물을 저장하는 연못도 발견할 수 있다. 이름이 용지(龍池)인 이곳도 평범한 연못이 아니다. 원래는 화왕산 분화구였던 까닭이다. 창녕조씨 가문의 득성(得姓)에 얽힌 전설이 어린 곳이기도 하다. 
화왕산성 인근 진달래 군락지. 그 안쪽에 드라마세트장이 조성돼 있다.
화왕산성 인근 드라마세트장. 드라마 ‘허준’, ‘대장금’, ‘상도’ 등이 촬영됐던 곳이다.
화왕산성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또 다른 봉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 진달래 속으로 작은 초가집들의 모습도 보인다. 드라마 ‘허준’, ‘대장금’, ‘상도’ 등을 촬영한 세트장으로 그 앞으로 진달래 군락이 펼쳐져 있다. 억새와 진달래가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산성 인근과 달리 이곳에서는 산을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의 향연을 만날 수 있다.
화왕산성 인근 드라마세트장. 드라마 ‘허준’, ‘대장금’, ‘상도’ 등이 촬영됐던 곳이다.

창녕=글·사진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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