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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마다 희로애락이 너울… 형형색색의 위안이 꽃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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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04 21:08:27 수정 : 2015-06-18 18: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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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손가락 꽃그림’ 연작 내놓은 강준영 작가 중학교 2학년 때 그는 부모를 졸라 외국 유학을 떠난다. 록과 힙합문화에 매료돼 본고장을 무조건 가 보고 싶었다. 당시 친구들의 유학바람도 한몫했다. 호주와 미국을 오가며 중·고교 시절을 마이클 잭슨과 전설적인 힙합그룹 우탱 클랜에 젖어 살았다. 그런 호시절도 ‘IMF사태’가 터지면서 종지부를 찍는다. 귀국한 그는 고3 시절을 국내에서 다시 힘겹게 보내야 했다. 정작 고통스러운 일은 미대 진학 후 벌어졌다. 대학생활과 군복무 기간에 할머니, 아버지, 할아버지가 차례로 유명을 달리했다. 경제적 충격으로 불과 6년여 사이에 가족 구성원 3명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상실감의 극치였다. 유망 청년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강준영(36) 작가의 작업 실타래는 여기서 시작된다.

“어머니와 저 그리고 동생만 남았으니 졸지에 가장이 된 기분이었어요. 맏아들로서 미술작업을 한다는 것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곁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다독였지만 현실은 너무 힘들었다. 작업할 공간도 없어 선배 작업실에서 더부살이를 해야 했다. 요즘 상황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위안을 주는 소통은 행복과 사랑을 만들어 준다는 철학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강준영 작가. 그가 축원을 담은 그래피티 같은 회화작품 앞에 서 있다.


배려속에 작업을 하고있지만 불안한 구석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홍대 앞을 지나다 꽃집에 발길을 멈추게 된다.

“남녀 커플과 모자간으로 보이는 이들이 무척이나 행복해하는 미소를 지으며 꽃들을 고르고 있었어요. 너무나 부러운 모습이었지요. 관심도 없었던 꽃이 왜 그리도 예뻐보이는지 저 자신도 놀랐어요.”

그는 다음날 그 꽃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꽃’이란 존재에 성큼 다가서기가 힘들었다. 떠나 보낸 조부모와 아버지 장례식장의 조화가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각양각색의 꽃들 모습이 머리가 아닌 가슴을 채우기 시작했어요. 그런 게 아마도 위안인 것 같아요.”

그는 어느 틈엔가 꽃들이 많이 모인 꽃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형형색색의 많은 꽃들이 처음엔 섬뜩했지만, 이내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그런 느낌과 감정들을 글로 쓰고 드로잉을 했다.

“일주일에 3일 정도 꽃시장에 가서 드로잉을 하고, 또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그 꽃들을 상상하며 매일매일 꽃에 대한 드로잉과 작업일지를 써 내려 갔습니다.”

‘2000일 이야기 중 드로잉 시리즈’는 그렇게 탄생했다. 다양한 꽃들을 정물이 아닌, 상상의 꽃으로 발전시켰다.

“상상의 꽃 드로잉은 저의 마음을 안정시켜주었고, 가족을 잃은 슬픈 마음에서 헤쳐 나가야 할 힘을 가진 꽃이 됐습니다. 저와 같이 슬픈 이야기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그린 ‘꽃 시리즈’
그는 요즘 선배 작가들이 표현한 꽃을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가가 루이스 부르주아다. 어마어마한 부르주아의 시각적 언어가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다섯 송이의 ‘붉은 꽃’ 드로잉이 작가와 남편, 세 아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혈관이 흐르는 것 같은 붉은 꽃에는 작가가 경험한 삶의 희로애락과 피를 나눈 가족 간의 끈끈함과 애잔함이 녹아 있는 것 같아요.”

생전의 부르주아는 자신의 작품을 상처를 정화하고 치유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 부르주아가 붉은 꽃을 반복해서 그린 것은 그가 어린 시절 받은 상처에도 연유한다. 어린 시절 자신의 집에 입주한 영어 가정교사와 불륜관계를 맺는 아버지와 그러한 사실을 연약하게 묵인하며 살아야 했던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그 안에서 그가 키운 감정엔 분노와 배신을 넘어서는 슬픔이 있었을 것이다.

꽃에 대해 부르주아는 이런 말을 남겼다. ‘꽃은 나에게 있어 보내지 못하는 편지와도 같다. 이는 아버지의 부정을 용서해 주고, 어머니가 날 버린 것을 용서해 준다. 또한 아버지를 향한 나의 적개심도 사그라지게 한다. 꽃은 나에게 있어 사과의 편지이고 부활과 보상을 이야기한다.’ 강 작가는 부르주아의 꽃을 ‘위안의 꽃’으로 승화시키려 한다.

“부르주아의 꽃은 사투에 가까운 삶에서 건져올린 전리품 같은 것이지요. 실제 삶에서 그는 자신을 희생자로 봤습니다. 그게 그가 예술을 하게 된 이유지요. 그래서 그는 예술에서만큼은 자신이 킬러라고 자위했습니다.”

그는 천재 낙서화가 바스키아와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자유로움과 막강한 표현력에서 무한한 힘을 얻는다.

“힙합문화의 파워를 그림에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랩퍼의 독백하듯 쏟아내는 말이 우리 이야기가 되고 위안이 되는 것처럼요.”

그는 도자작업과 그림작업의 경계를 오가는 작가다. 31일까지 열리는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에도 ‘그림도자’ 작품을 출품했다. 6월13일까지 갤러리 청안에선 꽃 그림을 보여준다.

랩퍼처럼 사랑 등 위안이 되는 말들을 그래피티(낙서화)로 쏟아내기도 하고 그림속에 위치시키기도 한다. 자유자재한 모습이다. 그림도 흙덩어리를 물래 위에 올려 놓고 주무르듯이 그린다. 손가락을 붓 삼아 물감을 칠해나가는 방식이다. 붓 선보다 육체성이 강조돼 힘이 있고 생기가 넘친다. 육감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의 기본구조에 항아리 같은 구조가 등장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외국생활에서 오는 향수가 느껴진다.

“따뜻한 손길이 그리웠던 저는 고향집 뒷마당의 항아리들을 떠올리곤 했어요. 지금은 추억이 되어 미소 한 자락으로 남은 내 어린 시절, 고향 냄새지요.”

그의 캔버스엔 이같이 낙서처럼 조합된 위안의 기억들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지나간 그 시절 삶의 단편들이 그를 이끌어 주고 지탱해 주는 힘이 되고 있다.

자신의 주어진 삶에서 길어올린 감성을 당당히 자유롭게 풀어내는 젊은 세대의 자유로움이 돋보인다. 그것이 이 시대의 위안으로 다가온다.

글·사진=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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