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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부재 속에 갈 길 잃은 현대인들…

입력 : 2015-05-15 06:09:29 수정 : 2015-05-15 0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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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스피킹 인 텅스’ “이 모든 게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나 어둡고, 상처 입고 길을 잃어버린….”

다소 감정과잉으로 느껴지는 이 대사는 연극 ‘스피킹 인 텅스’ 속 인물들이 처한 현실을 한마디로 설명해준다. 이들은 모두 불안하고 외롭다. 꿈속에서는 바위가 떨어져내리고 발목이 점점 모래 속으로 빠져든다. 모순적인 점은 작품 속 9명의 인물이 서로 촘촘하게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부부·연인이거나 이웃, 불륜 관계, 심리상담으로 만난 사이다. 홀로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고독은 이들의 내면을 파고든다. 혹은 이들이 혼자가 아니기에, 남과 손을 잡고 있기에 소통 불가능이라는 장벽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는지도 모른다. 

‘스피킹 인 텅스’는 거미줄처럼 연결된 9명의 인물들 사이의 사건을 동시에 보여주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수현재컴퍼니 제공
‘스피킹 인 텅스’는 호주 유명 극작가 앤드루 보벨의 대표작이다. 1996년 시드니에서 초연한 이래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영미권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올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아시아 초연으로 공연 중이다. 2001년 ‘란타나’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구조가 독특하다. 등장인물 9명이 거미줄처럼 연결됐으며 한 무대에서 두 상황이 동시에 벌어진다. 무대는 좌우 대칭으로 꾸며졌다. 1막에서는 두 쌍의 부부가 우연히 서로 배우자를 바꿔 하룻밤 불륜에 빠져든다. 왼쪽 무대에서는 피트와 소냐, 오른쪽에서는 리언과 제인이 외도 중이다. 대사도 함께 내뱉는다. 남편 두 명이 동시에 “정말 나다운 뭔가를 느끼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같은 대사를 말하는 이들은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는 듯 보이면서도 미묘하게 공허하다.

외도 후 재결합한 두 부부는 상대에게 인상적인 경험을 털어놓는다. 리언은 아내에게 우연히 알게 된 닐의 사랑담을 들려준다. 제인은 남편에게 이웃집 남자 닉을 신고했다고 말한다. 이 대화 속 닐과 닉의 사연이 2·3막에 역시 병렬 형식으로 전개된다. 닐은 결혼을 약속했다가 갑자기 사라진 세라를 몇년째 기다리고 있다. 닉은 심리상담사 밸러리를 차에 태워줬다가 실종사건 용의자로 몰린다. 밸러리는 남편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긴 뒤 실종된 상태다. 닐의 옛애인 세라는 밸러리에게 상담받고 있고, 동시에 밸러리의 남편과 내연 관계다.

복잡하게 얽힌 이들은 서로 어긋난다. 닐은 몇년째 애타게 세라를 기다리지만, 정작 세라는 “심각한 사이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밸러리는 남편에게 “우리 얘기해요. 예전처럼. 밤새도록”이라고 음성을 남기지만 남편은 아내를 일부러 외면한다.

연극은 여러 사건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감정이입을 방지한다. 서로 기대가 엇갈리고, 한 인물이 다른 이에게 감정적으로 가해자가 되지만 관객이 이들을 심판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가해자들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다. 연극의 말미에 남는 건 커다란 공동이다. 답장 없는 편지, 수풀 속으로 사라진 여성, 혼자 울리는 전화벨이 숙명과도 같은 소통 불능을 대변한다. 음악 사용은 최소화했다. 숨소리까지 들릴 듯한 공연장의 정적 속에, 상대에게 가닿지 못하는 극중 인물들의 대사를 새겨넣는다. 배우 4명이 9명의 배역을 1인 다역으로 연기한다. 이승준·강필석, 김종구·정문성, 전익령·강지원, 김지현·정운선이 더블 캐스팅됐다. 공연은 7월 19일까지 무대에 올려진다. 5만원. (02)766-6506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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