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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50+1' 프로젝트 덕에… 돈 걱정없이 제주 속살 맘껏 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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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18 20:26:11 수정 : 2015-05-18 20: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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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 펀딩’으로 1년간 작업에 몰두하고 전시한 사진작가 임재천 지난 토요일 저녁 강남역 인근의 대안공간 스페이스22(대표 정진호)에선 특별한 풍경이 펼쳐졌다. 작가는 50여명의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허리를 굽혔다. 작가에겐 난생 처음 가장 많이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올린 날이었다. 주인공은 사진작가 임재천(48)이었다. 그는 지난 1년간 제주를 찍었다. 그것도 50명의 후원자들이 재정지원을 해줘 가능했던 일이다. 이 날은 후원자들에게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그는 1년 동안 행복한 사진작가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후원자들에게 거듭해서 감사를 표했다.

“그동안 사진만을 위해서 경주나 부산, 제주를 가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돈벌이를 위해 갔다가 여분의 시간을 활용해 사진을 찍어 왔지요. 하지만 지난 1년은 달랐어요.”

크라우드 펀딩으로 새로운 작업모델을 보여준 임재천 작가. 그는 “작업을 계속해야 하나 늘상 갈등하고 있다”며 “작가에게 오로지 꿈이 있다면 작업에만 매달릴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으로 돈 걱정 없이 사진을 맘껏 찍을 수 있었다. 이를 가능케 해준 것이 ‘50+1’ 프로젝트였다. 사진작가가 정부 기관이나 기업, 갤러리나 미술관의 지원 사업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일반인들의 소셜 크라우드 펀딩에 힘입어 사진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이례적인 사례다.

“지난해 2월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50+1’ 프로젝트의 첫 시도라는 글을 올렸어요. 1주일 사이에 계획했던 50명이 화답을 해 왔습니다. 저에겐 기적 같은 일이었어요.”

‘50+1’ 프로젝트는 작가에게 100만원씩 재정 지원을 해 줄 50명이 성원이 되면 그 후원금으로 한 달에 10일씩, 1년에 120일 동안 사진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1년 뒤엔 A컷 수백장을 50명에 보여주고 각자 마음에 드는 1컷씩 고르게 한다. 말하자면 50명의 에디터가 작가의 사진 작품 중에서 1점씩 선택하는 것이다. 낙점된 50점의 사진으로 2주간 전시가 이뤄진다. 전시가 끝나면 후원자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사진을 소장하게 된다.

작가는 ‘50+1’ 프로젝트를 통해 제주를 필두로 9년간 5개도와 4개시를 사진으로 담을 예정이다. 강원도 촬영도 후원자 50명이 이미 확보돼 이달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보기에 따라선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 또는 소셜 펀딩과 많이 닮아 있으나 허브 사이트나 특정 조직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개인이 추진한다는 점에서 국내는 물론 세계를 통틀어 첫 시도라 할 만하다.

그는 제주작업에서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 가슴에 담았다. 처음엔 어느 한 곳에 거처를 정하고 스쿠터를 이용해 제주를 촬영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애초의 계획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주는 그 이면에 간직한 숱한 이야기들과 삶의 모습들을 담아내는 데 10년이란 시간도 무색하리만치 넓고 속 깊은 땅이었습니다. 제주를 배운다는 자세로 수많은 오름을 거듭해서 오르고 또 숱한 길을 매번 걸었습니다.”

그는 오름에 오르기 전엔 제주를 논하지 말라고 했다. 그저 단순한 관광지로 왔다가는 나그네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오름에 오르면 척박한 땅을 일군 제주민의 피땀이 보이게 됩니다. 11월 육지에선 회색빛이 물들어 갈때 오름 자락 밭엔 감자와 당근, 무들이 여전히 푸르지요. 화산토와 돌로 이뤄진 땅에 해초를 걷어다 거름을 하고 진흙을 퍼와 덮었던 ‘생명의 노력’들이지요.”

그는 비로서 제주의 아름다움이 천혜의 자연 경관 때문만이 아니라 제주를 생명의 섬으로 일궈낸 제주민의 피땀에서 비롯된 것임을 자각하게 된다. 요즘 중국자본에 의한 난개발이 더욱 가슴 아픈 이유다.

“제주민의 부단한 삶이 지속되는 공간으로 제주를 인식할 때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겁니다. 제 작품이 그런 인식을 발화시키는 작은 불씨가 됐으면 합니다.”

그의 제주 작업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외지인에 배타작인 ‘괜당 문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진 촬영엔 파사체와의 소통이 우선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른신들에게 아버님, 어머님 이라고 불렀더니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습니다. 제주 지인이 ‘삼춘’이라 호칭해야 한다고 알려줘 겨우 극복을 했지요.”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후원자들이 전시장에서 작가와 함께 자리를 했다. 제주와 수원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이들의 직업도 어촌계장에서 약사까지 다양했다.
제주에선 남녀 구분 없이 연배인 사람을 부르는 호칭은 ‘삼춘’이다. 그가 삼춘이라 부르는 순간 그도 같은 괜당이 됐던 것이다. 강인한 생명력과 자존감으로 언제나 온 얼굴에 웃음을 띤 채 더우나 추우나,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바다와 땅을 오가며 일 년 내내 제주를 푸른 생명의 땅으로 환치시키는 데 크나큰 역할을 해 온 이들이 바로 삼춘들이다. 그가 뭇 삼춘들께도 이번 사진전을 바치는 이유다.

이즈음 해서 불치병에 죽어가면서도 제주를 담았던 사진작가 김영갑이 생각난다. 김영갑은 그가 찍는 사진이 분명 풍경사진이지만 궁극에는 다큐멘터리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오늘의 이 풍경은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의 가장 뛰어난 장점 중 하나는 대상을 사실대로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이다. 기록적인 역할 수행이라 할 수 있다.

“저의 사진 미학은 기록에 있습니다. 기록에 충실한 것이 사진이고 예술이지요. 한편 공허하고 무모한 짓 같아도 더욱 더 열심히 이 땅을 걷겠습니다.”

그의 사진엔 풍경과 사람이 한데 녹아 있다. 지금 이 시대 직면해 있는 것에 카메라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임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것이 많다고 했다. 우선 50명의 후원자가 작품을 선택한 ‘사유’를 손에 넣게 됐다. 작가로서 사진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들을 채집하게 된 것이다. 작업의 또 다른 상상력으로 삼을 수 있다. 컬렉터와의 소통이라는 값진 소득도 챙겼다.

“무엇보다 이번 프로젝트는 가난한 작가에게 작업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컬렉터에게는 작품생산을 조력하고 자신의 눈으로 작품을 선별해 소장하는 기쁨을 줍니다.”

그는 지원해 준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페이스북에 사용처를 상세히 공개하기도 했다.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의 새로운 ‘협업’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29일까지 열리는 전시와 함께 사진집 ‘한국의 재발견 - 제주도’(눈빛출판사)도 출판됐다. (02)3469-0822

글·사진=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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