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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곁에 있을 때 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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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24 20:42:31 수정 : 2015-05-24 21: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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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살다 보면 흘러간 유행가의 가사가 가슴팍을 후벼 팔 때가 있다. 요즘 내가 그렇다. 가수 오승근씨의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의 첫 가사가 유독 내 심금을 울린다.

벌써 3주가 지났다. 대학 시절 절친했던 H형이 저 세상으로 떠난 지도. 이젠 좀 무뎌질 법도 한데 H형의 이름만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H형은 2013년 10월쯤부터 육종암으로 투병하다 암세포가 폐로 전이돼 지난 3일 서른 네 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남정훈 체육부 기자
2004년, 서울대에 입학했을 때 난 두려웠다. 모범생들만 그득할 것 같은 그곳에서 ‘돌연변이’ 같은 내가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싶어서. 내가 소속된 사회대 겨레반엔 다섯 학회가 있었고, 새내기들은 무조건 학회 하나를 골라야 했다. 난 주저없이 나처럼 ‘괴짜’ 같은 03학번 선배들이 많아 보였던 ‘새세창(새로운 세상을 여는 창)’이란 언론 학회를 택했고, 그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새세창은 내 대학 생활의 전부였고, 평생 함께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 얘기를 갑작스레 꺼낸 이유는 03학번의 ‘똘끼’ 충만한 형들을 울타리 같은 큰 포용력으로 품었던 게 02학번이었던 H형이다. 그가 없었다면 난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H형의 부재가 더욱 아프다.

H형을 마지막으로 본 게 지난해 10월쯤이었다. H형은 완치 판정을 받기로 했던 지난해 11월 자신의 생일날, 충격적인 재발 소식을 들었다. 실망이 컸던지 이후 H형은 단체 대화방에서도 나가고 오로지 치료에만 전념했다.

그때 이후 처음으로 본 H형이 싸늘한 주검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H형이 떠나기 전 불과 3일 전 우리는 모여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 사실상 힘들어진 H형과 어떻게 작별인사를 할지 의논했다. ‘하루라도 빨리 보러가자’, ‘형의 연락을 기다리자’로 의견이 갈려 결론을 못 냈다. 그때 우린 미처 몰랐다. H형이 빌어먹을 암세포와 싸우는 하루는 우리의 1년 아니 10년 같음을. 하루라도 더 빨리 뛰어갔어야 했다.

자괴감이 컸던 난 빈소를 지키던 2박3일 내내 가슴으로 울었다. H형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지막 사투를 벌이던 3일 새벽, 난 동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자리가 파할 즈음인 새벽 6시에 비보를 접하곤 그 자리에 앉아 몇 십분을 펑펑 울었다. H형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리고 술에 취해 당장 달려갈 수 없는 내 꼴이 너무나 한심해서. 하나 더. 빈소에서 만난 예비 형수님은 “H가 답장은 잘 안 했지만, 친구들의 위로 문자에 너무나 좋아했어요”라고 했다. 난 H형이 받을 무수한 위로의 말들이 그에겐 또 하나의 소음, 스트레스가 될까 싶어 최대한 자제했다. 입관식 때 싸늘한 H형의 얼굴에 대고 뒤늦게 불러본 H형의 이름과 사랑한다는 고백은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과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한 심중의 한 마디’가 되어버렸다.

세상 사람들에게 고하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애인을 볼 수 있을 때 무조건 자주 만나 사랑한다고 표현하라고. 더구나 신록의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개그맨 박명수의 말처럼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었다’고. 있을 때 잘하라고….

남정훈 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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