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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구순…죽기 전 일본 사과 꼭 받고파"

입력 : 2015-06-08 20:47:23 수정 : 2015-06-08 20: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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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김군자 할머니
“일본은 결국 사과와 배상을 안 하고는 못 견디게 될 거야. 그런데, 사과 받기도 전에 자꾸 할매들이 저세상으로 가고 있어. 죽기 전에 일본이 사과하는 거 꼭 봤으면 좋겠어.”

올해로 구순을 맞은 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사진) 할머니는 다소 떨리고 느린 속도지만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8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따르면 최근 별세한 이효순(91) 할머니를 비롯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잇따라 숨져 현재 정부 등록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김 할머니를 포함해 52명뿐이다.

김 할머니는 꽃다운 열일곱 살이던 1942년 심부름인 줄 알고 집을 나섰다가 중국 훈춘(琿春)에 있는 위안소로 끌려가 광복이 될 때까지 고초를 겪었다. 할머니는 “세 딸 중 맏이로 태어나 13살에 고아가 되고부터 77년을 힘들게 살아왔다”며 “옷 장사, 라면 장사, 밥장사, 식모살이까지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억척같이 일했다”고 지난 세월을 회상했다.

역사의 피해자였지만 김 할머니는 언제나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왔다.

지난 5월 서울 광진구 영화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지구촌공생회에 네팔 지진 피해자를 위한 성금을 전달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이옥선·김군자 할머니, 송월주 지구촌공생회 이사장, 이옥선 할머니.
비영리 공익재단인 ‘아름다운재단’이 막 생겨 걸음마를 하던 2000년 궂은일을 하며 푼푼이 모은 5000만원을 쾌척해 재단의 ‘1호 기금’을 만든 것이 김 할머니다. 김 할머니는 2006년 재단에 5000만원을 추가로 내놓는 등 어려운 사람들을 도운 공로로 작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최근에는 퇴촌성당에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 달라면서 전 재산 1억원을 기부해 할머니의 수중에는 단돈 40만원만 남았다.

“돈을 내가 쓰는 건 너무 아까운데 남 주는 건 하나도 안 아까워. 나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안 나오게 하려고 그렇게 살았어. 나는 힘들게 살았고 배우지도 못했지.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들 도와주세요.”

이우중 기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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