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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칼럼] 휴가는 재충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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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8-16 21:41:24 수정 : 2015-08-16 21: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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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위한 휴가는 심신만 더 피곤
삶의 평화와 여유 찾는 휴가 즐기길
시대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게 마련이다. 휴가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20여년 전에 ‘휴가는 꼭 가야 하는가?’라는 의문부호를 달았다. 아마 먹고살기 바쁜데 호사롭게 휴가를 가느냐라는 뜻이리라. 10여년 전에 ‘휴가는 갈 수 있으면 간다’는 긍정적 전환을 이루었다. 휴가는 낭비가 아니라 재충전이라는 사고를 가지기 시작했다. 요즘 ‘휴가는 꼭 가야 한다’는 사고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휴가를 가지 않고 일을 해봤자 효율이 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휴가가 창조적 사고를 낳는 바탕이거나 지금의 고통을 낫게 하는 치유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휴가는 이제 가면 좋거나 가야 하는 활동으로 간주되고 있다.

휴가에 대한 사고가 이렇게 바뀌어 가고 있지만, 생각과 표현의 습관에 따르면 휴가를 ‘재충전’과 연결시키는 사고가 강하게 남아 있다. 아마도 휴가에 대한 새로운 언어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관습적으로 ‘휴가=재충전’이라는 철 지난 표현을 쓰고 있는 듯하다. 재충전은 휴가만이 아니라 산업, 라이프 스타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기존에 하던 일을 접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쉬면서 준비할 때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고 하고, 프로 스포츠선수가 기존 팀을 떠난 뒤 새로운 곳을 잡지 못하거나 바로 새로운 곳을 가지 않고 약간의 휴지기를 가질 때도 재충전이라는 말을 쓴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
재충전이라는 말이 우리의 삶에 깊숙하게 침투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휴대전화의 광범위한 보급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아직도 휴대전화를 쓰면서 이르면 하루 만에, 늦어도 2∼3일 안으로 충전을 새롭게 해야 한다. 오래가는 배터리가 상용화되지 않는 상태에서 충전속도를 높이고 보조장치에 의존하지만 결국 충전을 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첨단상품이라고 해도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갖게 된 ‘충전’의 기억은 휴가나 기타 영역으로 확대돼 ‘재충전’이라는 새로운 표현과 사고방식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휴대전화의 전원을 충전해 다시 사용하는 것처럼 사람도 휴가로 자신을 재충전해서 쓴다는 사고가 무슨 문제는 없을까. ‘휴가=재충전’의 낡은 사고에는 노동 중심 또는 일 중독의 사고가 들어 있다. 충전 자체가 재사용을 전제하는 말이므로 재충전은 사용을 지속적으로 되풀이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되면 휴가는 휴가 자체로서 의미를 갖지 못하고 일터로 돌아가서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채우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 결과 휴가를 위한 휴가가 아니라 노동을 위한 휴가가 된다. 이는 휴가의 의미가 바뀌고 있지만 우리가 아직도 휴가를 노동과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노동의 하위 가치에 종속시키고 있는 사고에 익숙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휴가를 재충전으로 여기게 되면 사람은 충전을 통해 늘 다시 쓸 수 있다는 물품처럼 소모품으로 여겨지지 인격을 가진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

사람은 노동을 통해 생계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청년과 장년의 안정적인 취업이 험난해지면서 노동의 기회는 생계와 자아실현의 의미에 한정되지 않고 사람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중요한 목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은 끊임없이 충전을 해 노동의 현장에서 이탈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아직 휴가를 가기는 하지만 즐기지 못하는 탓에 ‘좋기는 하지만 피곤한 휴가’를 보내고 있다. 휴가마저 일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휴가를 다녀오면 심신이 가뿐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피로해 일상에서 돌아와서 다시 쉬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곤 한다.

휴가는 삶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듯이 휴가를 즐기는 방식도 지금보다 더 다양해져야 한다. 그 핵심은 느리게 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심신을 평화롭게 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평화와 여유의 체험은 재충전이 아니라 정화와 활력을 가져올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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