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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잡지가 출판사 사보냐”

입력 : 2015-08-27 20:40:53 수정 : 2015-08-27 22: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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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호 계간지들, 신경숙 사태 반영 잇따라 “공적 역할을 잃어버린 문학잡지, 비평가가 출판사의 주주가 되어 영리를 잊어버릴 수 없는 문학잡지의 풍요는 사적 소통과 소란에 불과한 ‘사보(社報)’들의 향연이다.”

신경숙 표절 파문 진앙인 출판사 창비가 사태 시작 이후 두 달 만에 계간지 ‘창작과비평’ 가을호를 통해 전달한 문학평론가 정은경의 기고문 중 일부다. 애초 표절 파문이 불거진 후 긴급히 마련된 토론회에서 발표한 정씨의 글인데, 창비에서 게재를 요청하자 이후 상황을 검토해 추가한 ‘보론’에 담긴 내용이다. 이 잡지 ‘책머리에’ 백영서 편집주간이 ‘창조와 저항의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한 창간호 권두언을 언급했거니와 실제 유신시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수행한 그 역할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다만 지금도 여전히 그 시절 광휘를 아우라로 삼아 사적 소통 수단으로 전락한 소란한 ‘사보’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창비 편집진은 표절 시비를 불러온 신경숙의 작품을 두고 “의도적 베껴 쓰기라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물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겼기에 공공성과 사업성의 결합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왔고 그간 거둔 사업적 성과 또한 공공적 기여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피력했지만 이들의 주장이 그리 순탄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같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열린 토론회(사진) ‘한국문학, 침묵의 카르텔을 넘어서’에 발제자로 참여한 문학평론가 소영현은 “(창비의 긴급특집에 실린) 세 편의 글은 개별 글의 내용과 무관하게 창비의 무성의한 태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해서 창비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대했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함을 금할 길 없다”면서 “문학권력과 문학장 논란은 이제 사과나 특정 작가의 표절 여부를 판정하는 것만으로 수습되고 정리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문학평론가 임태훈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안적 문학 생산 주체들의 생성을 구상하고 그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한국문학이란 그저 ‘스캔들의 기쁨’을 아는 퇴물로 전락할 것”이라고도 했다.

‘실천문학’은 전 지면을 표절 사태와 관련된 특집으로 꾸몄다. ‘유체이탈의 현상학: 표절 사건과 세월호 참사는 무엇이 다른가’라는 특별기고에서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자기 외의 누군가만을 단죄하는 것은 곧 ‘유체이탈’이며 창비도 문학동네도 나도 유체이탈을 한 것”이라고 썼다.

‘문학과사회’는 “진정한 반성은 사과라는 형식적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변화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문학평론가 황호덕 김영찬 소영현 김형중 강동호가 참여한 좌담을 실었다. 신경숙 사태 특집으로 좌담을 포함한 편집진의 글을 수록할 것으로 알려진 ‘문학동네’ 가을호가 주목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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