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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만흥한(滅滿興漢). 만주족 청(淸)을 무너뜨리고 한족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구호다. 백련교의 난 때, 태평천국의 난 때 나왔다. 1911년 신해혁명에서도 이 구호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중국의 국부’ 쑨원(孫文)의 삼민주의에도, 1905년 국민당 강령에도 등장한다.

무슨 뜻인가. 남쪽의 한족은 만주족을 별종으로 여겼다. 청의 순치제. 그의 나이 여덟 살 때 만주팔기가 북경에 밀려들자 중국은 청으로 바뀌고 만다. 머리카락을 밀어 변발을 한 중국인들,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민머리를 매만지며 멸만(滅滿)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았을까.

만주족의 뿌리를 찾고 싶었던 청 강희제, 고증학자를 총동원해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를 만들었다. “숙신씨부터 이후 한나라 때에는 삼한이 되고, 위·진 시기에는 읍루가 되고, 원위(북위) 때에는 물길이 되고, 수·당 때에는 말갈 신라 발해 백제 여러 나라로 갈렸다.” “옛날에는 만주(滿珠)에 속한 것을 ‘주신(珠申)’이라고 불렀는데, 뒤에 만주(滿珠)로 고쳐 불렀다. 한자로 옮기고 전해지는 과정에서 잘못되어 만주(滿洲)가 되었다.”

‘주신’은 무엇인가.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주선’이다. ‘조선(朝鮮)’은 어디서 유래한 이름일까. 수천년 전 한자를 생각 없이 따와 ‘아침 조’에 ‘빛날 선’을 썼을까. 아이 이름 하나 지어도 혈통을 따져 성과 돌림자를 붙이지 않는가. 조선과 주신은 ‘하나의 종족’을 이르는 같은 말이 아닐까.

요하, 대릉하, 난하. 모두 만리장성 북쪽에 있는 강이다. 이들 물줄기를 따라 기원전 8000년∼기원전 1500년에 번성한 요하문명. 앞뒤로 신낙·소하서·흥륭와·사해·부하·조보구·홍산·소하연·하가점 문화가 있으니 통틀어 이른바 요하문명이라고 한다. 황하문명보다 앞선다. 이들 지역이 모두 동이족이 활동한 곳이다.

‘중화민족’. 동양의 종족적 전통에 소수민족 통합이데올로기를 덧씌운 개념이다. 중국이 이 개념을 앞세워 선사시대 문명을 중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역사·문명공정을 벌이고 있다.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 12년째다. 칭기즈칸이 중국 영웅으로 변하듯 요하문명이 또 중국 것이 되게 생겼다.

멸만흥한은 어디로 간 건가. 동이족의 후예는 부글부글 끓는다. 공격당하는 역사·문명 전쟁의 전열. 답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주신’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 보면 어떨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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