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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국민 위해 기도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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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0-05 21:02:44 수정 : 2015-11-03 11: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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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신음하는 헬조선… 고장난 사회시스템 탓
개혁요구 외면하는 권력욕 가득한 정치,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
부산 도심 산속에서 심야에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여성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범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수십명이 밤새 산속을 뒤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수년째 직장을 구하지 못한 20대 여성이 친구들과 산에 놀러갔다가 “하나님, 취업 좀 되게 해주세요”라고 취업 소원을 빌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웃을 수 없는 슬픈 얘기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옥황상제에게 손발이 부르트도록 빌고 또 빌어도 일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지도층 자녀가 취업 특혜를 받는다는 ‘현대판 음서제’ 때문에 “튼튼한 동아줄 하나 내려달라”는 기도라도 해야 할 판이다. “살려달라”는 젊은이들의 아우성이 도처에서 들끓어도 청년 실업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6년 만에 떨어졌다는 작년 자살률 통계에서 유독 20·30대 자살률만 늘었다는 대목이 불길한 조짐으로 느껴진다. 

김기홍 논설실장
노인의 삶도 고단하다. 급속한 고령화와 맞물려 갈수록 심각해지는 노인 빈곤과 자살 문제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 올해 65세 이상 고령자는 전체 인구의 13.1%를 차지하고 있다. 고령인구 비중이 14% 이상 되는 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노인 절반 정도가 전체 노인 가구의 중간소득에도 못미치는 가난에 시달린다는 뜻이다. 26∼65세의 상대적 빈곤율이 OECD 평균 수준인 것과 비교된다. 복지 수준이 떨어진 탓도 있지만 노인 간 빈부 격차가 큰 것이 주 원인이다.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82명으로 OECD 1위의 불명예를 털지 못하고 있다.

청년 세대, 노인 세대가 고용절벽 소득절벽에 가로막혀 ‘청년 난민’ ‘노인 난민’으로 떠도는 작금의 현실은 ‘헬조선’으로 불릴 만하다. “그래도 세상은 아직도 살 만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만 미래를 이끌어 가야 할 젊은 세대, 오늘의 사회를 이끈 ‘오래된 미래’ 세대가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앞다퉈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고 고국을 떠나는 탈출 행렬에 나서는 것은 우리 사회가 살 만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고용절벽, 소득절벽을 포함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양극화, 불평등, 불합리 등이 빚어낸 왜곡된 사회구조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일부의 선의(善意)나 배려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청년희망펀드 역시 ‘착한 마음씨’에도 불구하고 청년 일자리 문제의 근본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지금의 총체적 위기 극복은 사회 운영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구조 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구조 개혁에는 기득권의 저항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반대 세력을 설득하고 포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구조 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인 사회적 합의와 연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설득과 대화를 통한 소통과 공감이 중요한 이유다. 박근혜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 노동 금융 교육 4대 분야 개혁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과정을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하는데 혼자 앞서가려고 할 뿐 함께 가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사회의 문제 해결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우리 정치는 너무 무능하다. 세월호 사태 때 분출된 개혁을 향한 열망을 하나로 묶지 못한 것도 정치 리더십의 부재 때문이다. 국민의 신음소리가 가득한 이 시간에도 여야는 공천권 다툼을 벌이며 권력 놀음에 빠져 있다. 이쯤되면 호랑이보다 무서운 가혹한 정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치는 태도의 문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 의회연설에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마태복음 구절을 전했다. 우리 정치인들도 교황의 호소를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 국민에게 대접 받으려거든 국민을 제대로 대접해야 한다. 미국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교황의 한마디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하원의장직에서 물러나는 결단을 내렸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눈물로 호소한다. 국민을 위해 기도해달라. 국민의 눈물을 닦아달라.

김기홍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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