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의 진동 통해 소금물 개천 확인 뉴호라이즌호의 명왕성 랑데부에 대한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화성 표면에 흐르는 물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은 화성의 따뜻한 지역에서 경사면을 따라 염류를 포함한 물이 흐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지역에서는 경사면을 따라 수 미터 정도의 폭에 길이가 수백 미터에 달하는 어두운 줄무늬 지형이 여름에 나타나다가 추워지면 사라지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관측되는데, 이 지형의 정체가 소금물의 흐름이라는 것을 이번에 확인하게 된 것이다. 화성의 극지에 얼음이 존재하고 화성의 땅 속에도 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표면을 따라 흐르는 소금물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은 생명체 형성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알려져 있기에, 이번 발견은 화성의 생명체 존재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는 발견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화성 표면을 흐르는 물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이와 같은 발견은 보통 빛과 물질이 만드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분석해 이루어진다. 태양으로부터 출발한 빛이 약 2억2000만㎞를 달려와 화성 표면을 흘러가는 물에 입사가 되면 일부는 반사되고 일부는 흡수된다. 태양이 방출하는 전자기파동에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뿐만 아니라 이보다 파장이 더 짧은 자외선이나 엑스선, 파장이 더 긴 적외선과 마이크로파 등 다양한 파장성분이 섞여 있다. 이들이 물에 입사되면 물은 특정한 파장성분을 주로 흡수해 버린다.
고재현 한림대 교수·물리학 |
재미있는 것은 분자들이 추는 춤은 모두 구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분자 댄스의 빠르기, 즉 진동수는 바로 분자의 지문과 같은 것이다. 분자를 거친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분자가 흡수한 특정 진동수를 확인하면 분자의 정체는 명확히 드러난다. 이제 태양을 떠나 12분의 짧은 여행 후에 화성에 도착한 전자기파의 운명을 상상해 보자. 따뜻한 여름 햇빛 속에서 경사면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소금물에 침투해 들어간 적외선은 자신의 에너지를 포기하며 산소 하나와 수소 두 개로 이루어진 물분자의 특정한 진동을 유도한 후 사라진다. 물분자의 진동주파수에 조응하지 못하는 적외선은 반사되어 화성의 대기로 흩어지는데, 이들 중 일부가 화성의 궤도위성에 장착된 망원경에 포착된다. 망원경에 달린 분광기가 그리는 반사 스펙트럼의 특정 파장 위치에 물분자가 추는 춤(진동)의 흔적이 새겨진다. 화성의 표면을 흐르는 물이 우리 인간의 측정장비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다.
원자나 분자에 대한 흡수분광법은 오늘날 광범위한 분야에서 사용하는 실험 기법이다. 이러한 분광법은 수십억 광년 떨어진 곳의 은하가 어떤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려주기도 하고, 미술작품의 표면 아래 숨은 물질을 드러내 작품의 진위를 알려주기도 한다. 외계행성의 대기를 통과한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성분을 파악하고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야심찬 계획도 세워지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온갖 종류의 물질과 전자기파동이 협연하며 만들어내는 교향악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아름다운 선율에 귀 기울이며 자연의 신비를 하나씩 들춰 나가는 기쁨을 누리는 것은 분광학을 이용하는 과학자들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특권일 것이다.
고재현 한림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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