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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농(神農)은 전설의 제왕이다. 황하유역 진(陳) 땅에 살다 지금의 산둥성 곡부(曲阜)로 옮겨 살았다고 한다. 염제(炎帝)로 불린다. 중국인은 그를 황제(黃帝)와 함께 염황(炎黃)으로 부르며 시조로 삼는다. 곡부는 고대에는 동이족 영역이었다고 하니 그가 누구의 피를 이어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신농은 백초(百草)를 직접 씹어 맛보며 약초를 찾았다고 한다. 한의학은 그로부터 시작된다.

신농만 풀을 씹었을까. 그가 풀을 씹자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픈 몸을 다스리기 위해 풀을 씹었을까. 사가의 붓대에 영웅호걸 이름만 남은 것은 아닐까.

‘신농본초경’과 ‘황제내경’. 한의학의 고전이다. 이 책이 만들어진 때는 춘추전국시대다. 신농, 황제가 산 때와는 수천년의 간극이 있다. 이후 한의학에 큰 획이 그어진 때는 금원(金元)시대다. ‘십서(十書)’를 지은 금의 이동원(李東垣). 강소·절강 지방에서 행해졌다는 북의(北醫)는 그로부터 비롯된다. ‘심법(心法)’을 지은 원의 주단계(朱丹溪). 황하 유역 관중의 남의(南醫)는 그에게서 시작됐다. 동의(東醫)는 이에 상대되는 말이다. 중국의 한방(漢方), 우리나라에서는 한방(韓方)으로 부르니 곧 동의(東醫)다. 동천(東遷)하는 동이족의 역사, 한방(漢方)을 중국의 것으로만 여겨야 할까.

‘동의보감(東醫寶鑑)’. 활인(活人)의 술을 갈고닦은 명의 허준의 역작이다. 청나라에서 30여 차례, 일본에서 두 차례 간행됐다. 청에서 간행된 동의보감 서문에 이런 글이 있다. “논어에 이르기를 ‘남쪽 사람들 말에 항심이 없으면 무당도 의원도 될 수 없다(南人有言曰 人而無恒 不可以作巫醫)’고 했다.” “정밀하지 못한 의술을 행하는 사람은 설명이 자세하지 못하고, 한 가지만 고집하는 의원은 의술의 도를 해친다.” 항심으로 활인을 생각한 허준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중국 중의학연구원 투유유(屠??) 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85세의 여성 한의학자는 한의학에 의지해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특효약을 찾아냈다. 온 중국이 “굴기를 상징하는 경사”라며 떠들썩하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왜 한의원에 손님이 없다고 하는 걸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 온고이지신(溫古而知新)의 정신으로 항심을 살려 활인을 생각하는데도 그럴까. 혹 영역다툼에 너무 빠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허준이 다시 태어난다면 무슨 말을 해줄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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