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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정주영은 매일 밤 멀리 떨어진 다른 동네 이장 집으로 향했다. 별빛을 가로등 삼아 2㎞의 논두렁길을 혼자 걸었다. 소년이 밤길을 걸은 것은 신문에 연재되는 이광수의 ‘흙’을 읽기 위해서였다. 소년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도시생활을 동경했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률서적도 구해 읽었다. 소년에게는 주체할 수 없는 꿈이 있었다.

꿈을 품은 소년은 집을 뛰쳐나왔다. 열일곱에 벌써 네 번이나 가출했다. 아버지가 소를 판 돈 70원을 훔쳐 나온 적도 있었다. 소년은 인천부두로 가서 막일을 했다. 잠자리에는 늘 빈대가 우글거렸다. 식탁 위에 올라가 잠을 잤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년은 꾀를 냈다. 식탁 다리를 물이 가득한 양푼 네 개에 담가 놓고 그 위에서 잠을 청했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빈대들은 다시 그의 피를 빨아먹기 시작했다. 불을 켜고 살펴봤더니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공중낙하하고 있었다. 소년은 생각했다. “빈대도 저렇게 온 힘을 다하는데 사람이 노력하면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빈대철학’으로 무장한 소년에겐 두려울 게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 부지런했다. 쌀가게에서 일하던 시절엔 일찍 깨어나 점포를 정리했다.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 할 일에 대한 흥분으로 잠자리에 오래 누워 있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심지어 해가 빨리 뜨지 않는다고 역정을 냈을 정도였다.

소년 정주영을 깨운 것은 가슴 벅찬 꿈이었다. 잠을 자면서가 아니라 두 눈을 부릅뜨고 꾸는 꿈이었다. 인천부두에서 하역 일을 하던 시절엔 “내 손으로 저것보다 더 큰 배를 만들겠다”고 수없이 되뇌었다. 그 꿈은 나중에 세계 최대의 조선사를 만드는 씨앗이 되었다. 그가 훔친 소 한 마리 값은 훗날 ‘통일소 1001마리’로 불어났다. 소년은 평생 자신의 꿈을 위해 씨를 뿌리고 물을 주었다. 정주영 탄생 100년을 맞은 오늘, 우리가 되새길 것은 이런 ‘정주영 정신’이 아닐까.

요즘 ‘흙수저’ 논란이 뜨겁다. 흙수저라면 정주영 만한 사람이 없다. 그는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강원도 시골뜨기였다. 하지만 남이 논바닥의 흙을 보는 동안 그는 논두렁에 핀 꽃을 보았다. 캄캄한 새벽에 정주영이 마주한 것은 짙은 어둠이 아니라 반짝이는 별이었다. 그 스스로 새벽별이 되었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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