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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못된 까마귀에 못된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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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1-21 21:07:21 수정 : 2016-01-21 2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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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돈 내라” 맞서다 누리과정 파국 초래한 말 많은 사람들
속히 응급처방 내고 재발 막을 후속조치도 머리 맞대고 강구해야
워낙 말들을 잘하면 잘잘못을 가릴 판관도 골치만 썩이게 되는 법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권의 시라쿠사(시칠리아 도시국가) 판사도 그랬던 모양이다. 고심을 거듭했다고 한다. 법정에 선 두 당사자 코락스와 티시아스의 언변이 청산유수였던 것이다.

기원전 5세기 인물로 전해지는 코락스는 세 치 혀로 시라쿠사 의회를 쥐락펴락한 변론가다. 영국 저널리스트 샘 리스의 ‘레토릭’에 따르면 그는 티시아스를 제자로 받으면서 합의문을 작성한다. 변론술을 전수하되 사례금은 티시아스가 첫 소송에서 이겨야 비로소 받기로 하는 합의였다. 티시아스가 지면? 코락스는 사례금을 포기해야 했다. 분란은 티시아스가 소송을 회피하면서 터졌다. 첫 소송이 없으니 첫 승소도 없고 사례금도 없다. 낯 뜨거운 소송이 전개된 이유다.

이승현 논설위원
스승과 제자는 팽팽히 맞섰다. 코락스는 우선 자신이 이길 경우 당연히 사례금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자기가 져도 티시아스의 첫 승소가 되니 역시 사례금이 있어야 한다고. 티시아스는 정반대였다. 자신이 이기면 사례금을 낼 필요가 없고, 져도 첫 소송 패소여서 지급 의무가 없다는 논지였다.

마침내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대란이 터졌다. 중앙정부와 교육청, 자치단체, 지방의회 이해가 난마처럼 얽힌 대란이다. 모두 20일을 넘기면 한 달에 한 번 예산을 지원받아 인건비, 급식비, 난방비 등에 쓰는 유치원·어린이집의 통장 잔고가 바닥나 파국이 온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입씨름만 벌이다 선을 넘은 것이다. 책정 예산이 ‘0원’으로 찍힌 서울 등의 원장·교사들은 하필 이 혹한에 거리투쟁에 나선 판국이다. 원아 부모들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책임을 면할 길 없는 관련자들은 자기 주장만 쏟아낸다.

쟁점은 비용을 누가 대느냐다. 달리 말해 총 4조원대의 비용을 놓고 중앙정부, 교육청 등이 서로 “네가 돈을 내라”고 맞서는 형국이다. 사례금을 놓고 “내라”, ‘못 낸다”고 다툰 코락스와 티시아스 대결과 판박이다. 청산유수인 점도 똑같다.

교육청, 지방의회는 야당과 더불어 무상보육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란 점을 지적한다. 중앙정부가 비용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법적 책임이 각 시도교육감에 있으며 교육감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 지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희 정승 식으로 보면 다 옳다. 난형난제다.

응급처방은 뭘까. 남경필 경기지사는 지난 19일 “내일(20일)이면 보육대란이란 불이 붙게 되는데, 우리 집 물로 끌지 옆집 물로 끌지 따지겠느냐”고 했다. 정곡을 찔렀다. 국민 대다수도 그렇게 느낀다. 하지만 제 잇속만 밝히느라 자명한 이치에 눈 감는 이들이 허다한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심지어 남 지사가 준예산 상태에서 긴급 편성한 910억원을 놓고도 시비를 건다. 혹여 제 돈을 내놓게 될까 봐 몽니를 부리는 격이다. 이 나라가 어찌 이 지경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가장 급한 것은 조기 진화다. 여야와 당략을 떠나 머리를 맞대고 미봉책이라도 구해 조속히 발등의 불을 꺼야 한다. 여기서 미적대다간 불이 몸통으로 번질지도 모른다. 누리과정 재설계도 필요하다. 예산 책임 주체와 전달체계 등을 선명히 하는 후속조치를 등한시하면 대란은 매년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여야의 ‘퍼주기’ 경쟁 속에 졸속 시행된 현행 시스템이 지속가능한지도 들여다봐야 한다. 현행 지방·교육자치에 개선 가능성은 없는지, 신중한 검토도 이뤄질 수 있다면 전화위복일 것이다.

코락스와 티시아스 소송은 어찌 끝났을까. 시라쿠사 판사는 “못된 까마귀에 못된 알”이라며 둘 다 법정에서 내쫓아버렸다고 한다. 속이 다 시원했을 것이다. 이번 대란을 보는 5000만 국민 심정도 매한가지다. 모두 엉덩이를 걷어차 내쫓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주권을 한시 위임한 국민을 우습게 봐선 안 된다. 관련자들은 입을 다물고 국민 눈치부터 살필 일이다. 그 어떤 능변으로도 못된 까마귀이거나, 아니면 못된 알에 불과한 몰골을 가릴 길은 없으니….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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