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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인본주의 정수를 보여주다

입력 : 2016-04-23 03:00:00 수정 : 2016-04-22 20: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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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장갑장수 집서 태어난 ‘흙수저’
번듯한 학위 없이 고전작가 문체 구사
광대 통해 철학적 섬세함 표현 감탄
400여년 전 관습·제약에 맞서 싸워
지옥 같았던 결혼생활 작품에 담아
일상적인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 구현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박소현 옮김/민음사/2만8000원
세계를 향한 의지/스티븐 그린블랫 지음/박소현 옮김/민음사/2만8000원


지금부터 400여년 전이다.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시골뜨기 청년이 런던에 왔다. 런던은 당시 세계 최고의 도시였다. 신대륙에 쏟아져 들어온 진귀한 향료와 엄청난 금, 은으로 흥청거렸다. 젊은이는 혜성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등극한다.

그가 쓴 대본은 런던의 대중을 매료시켰다. 학식 있는 사람들과 문맹자들, 도심의 세련된 시민들과 시골 촌부들인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무거운 정치적 주제를 우아한 시로 바꿔 읊는 천부적 재질을 보였다. 천박한 어릿광대짓 속에 철학적 섬세함을 버무린 솜씨는 신이 내린 재능이었다. 어느 한순간 법학에 통달한 학자처럼 보였다가 다음 순간에는 신학자가 되고 고대사학자가 되기도 했다. 목소리도 타고났다. 무지한 촌뜨기의 억양을 내는가 하면, 노파들 사이에서 흔히 떠도는 어리석은 미신이나 잡설도 떠들어댄다.

이렇게 드넓은 범위를 종횡무진 표현하고 묘사하는 성취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 하버드대학교 존코건대 교수인 저자는 20세기 최고의 셰익스피어 전문가로 꼽힌다. 저자는 1616년 4월 23일 셰익스피어의 400주기를 맞아 이 평전을 냈다. 이 작품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 노벨상인 홀베르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지난 400여 년간 수많은 독자(혹은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경이를 선사했다. 완벽하고 정교한 언어 사용, 인간 존재의 심연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 희극과 비극, 희곡과 소네트를 넘나드는 완벽한 성취에 이르기까지…. 그래서일까,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의혹은 해묵은 논쟁거리였다. 헨리 제임스나 마크 트웨인 같은 문호는 물론 역사학자와 문학연구자, 정식분석학자들까지 나서 셰익스피어에 얽힌 갖가지 의혹을 부추겼다. 하지만 한평생 그의 연구에 천착한 저자는 그의 실체를 의혹없이 그려낸다. 의혹과 추리소설 같은 논리들을 반박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저자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풍부한 사료를 정교하게 짜깁기한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셰익스피어를 묘사한다. 그러면서 시골 마을 장갑 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고전 작가들의 우아한 문체와 시정 잡배의 해학적인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원초적 능력을 풀이한다.

셰익스피어의 가정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열여덟 살 청춘 나이에 한순간 실수로 등 떠밀려 결혼한다. 결혼은 곧 악몽이고 지옥이었다. 햄릿과 맥베스, 오셀로, 겨울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그가 결혼의 악몽에 대해 한 술 더 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616년 셰익스피어의 죽음은 거의 주목받지 못한 채 지나갔다. 스트랫퍼드 홀리트리니티 교회에 그의 유해가 안식을 찾아 누웠을 때 온 세계가 애도하며 전율하는 일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동시대 문인들은 그를 냉대했다. 그의 대단한 문학적 성취에 대한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을까. 그럼에도 지난 400여 년 동안 사랑받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것이 얼마나 값지고 위대한지를 구현해냈다. 즉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인본주의적 성취를 가장 완벽하게 보여줬다는 평이다. 번듯한 배경도 없고 학위 하나 없이도 ‘거대 기존 질서’와 맞서 싸웠다. 셰익스피어는 인본주의가 꿈꾼 인간적 의지(will)의 현현이었다.

저자가 평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세계를 향한 의지’ 즉,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것의 승리였다. 지난 400여 년 동안 그러했듯이, 앞으로 400년간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세월 동안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계속 읽힐 것이다.

김연수 작가는 서평을 통해 “평전이 실증주의적으로 치밀해질 때 낭만주의적 천재는 피를 흘리며 죽는 게 일반적이지만, 오히려 우리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400여 년 전 온갖 관습과 제약 속에서 살았던 셰익스피어를 만날 수 있다”면서 “작가의 재능이란 어떤 시공간에 속하든 변치 않는 하나의 우주를 볼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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