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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열의 착한공유, 기증](2) "나는 김해 김씨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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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30 13:00:00 수정 : 2016-04-30 11: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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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노학자 한국과 아시아를 잇다. 가네코 가즈시게
서기전 1세기, 지금의 태국 동북쪽 반 치앙 마을에서 장례식이 열렸다. 머리는 동쪽으로, 얼굴은 남쪽로 향하게 시신을 안치했다. 주변에는 붉은 칠을 한 소용돌이 문양의 토기를 관의 형태로 둘렀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보이게 해 환생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2010년 9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테마전 ‘흙으로 빚은 아시아의 꿈’에 크림색 바탕에 주홍색의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토기가 출품됐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태국 반치앙 유적에서 발굴된 높이 44.2㎝의 ‘긴 목 항아리’. 반 치앙인들의 수준 높은 미감을 보여주는 유물이었다.

태국 반 치앙 유적 출토의 토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서기전 1세기와 2010년, 태국과 한국. 반 치앙의 무덤에 묻혔던 토기가 엄청난 시·공간의 단절을 극복하고 한국과 만난 것은 한 일본인 노학자의 지독한 한국 사랑이 있어 가능했다. 가네코 가즈시게(金子量重·1925∼) 아시아민족조형문화연구소장은 스스로 가네코(金子)라는 성이 김해 김씨의 후손임을 보여주는 게 아니겠냐고 말하는 사람이다. 



가네코 가즈시게 선생. 세계일보 자료사진


“우리 일본은 삼국시대 이래 한국으로부터 문화적으로 많은 은혜를 받았고, 이를 통해 고대 일본의 기반을 확립해 지금의 발전으로 이어올 수 있었다. 일본인으로서 작은 보은의 징표이다.”

2003년 ‘가네코 가즈시게 기증 아시아 민족 조형 특별전’의 기자회견에서 기증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가네코 선생의 대답이다.

그가 한국의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것은 1960년대 초반이었다. 한일협정으로 국교가 정상화될 즈음 가장 먼저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중 한 명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들과 지역부(地歷部)를 만들어 근처 유적에서 토기, 돌도끼 등을 수집해 전시회를 열 정도로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적의 관심은 대학에서 일본사를 전공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일본역사와 일본인의 생활문화는 주변 아시아 여러 민족과 맺어온 밀접한 관계를 빼고서는 올바로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해 주변국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교류 또한 활발했던 한국은 빼놓을 수는 없었다. 1964년 11월 한국을 처음 방문했고, 이후 아시아 전역으로 조사, 자료 수집의 여정이 시작돼 반세기 동안 500여회 아시아 여러 나라를 방문했다. 가는 곳마다 많은 유물을 수집했다.

특히 주목한 건 각 민족이 의식주, 신앙, 교육, 예능, 놀이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민족조형’이라는 새로운 인문학 장르를 개척하는 토대였다. 자연에서 가장 적합한 소재를 골라 숙련된 기술과 도구로 만든 물건은 삶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지역성, 시대성, 민족성이 배어 있다고 인식이다.

“선생의 학설은 (각 민족의) 물건을 미술과 공예, 즉 미술사적 관점에서만 바라보았던 한계를 지적하고 풍부한 현지조사와 혜안을 통해…물건의 근저에 항상 ‘인간의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논파한 것이다.”

(민병훈 전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장)

기증은 2002년 시작됐다. 막역한 친구인 곽소진씨를 통해 기증 의사를 밝혔고,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지건길 관장이 흔쾌히 수용해 이뤄졌다. 2002년 5월 250점을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2003년 7월, 2005년 9월 네 차례에 걸쳐 1035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해졌다. 토기, 도기가 가장 많고 목제, 죽제, 석제, 금속 등 재질별로 다양했다. 국적별로도 중국, 일본을 비롯한 베트남, 미얀마, 인도, 파키스탄, 네팔, 이란, 이라크 등 아시아 전역을 망라하는 것이었다. 민 전 부장은 기증품에 대해 “소장품 중 가장 가치가 뛰어난 유물이고 칠기는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라며 “현장을 답사하면서 직접 구한 것이라 각 유물의 내력, 제작기법이 분명하다. 골동상에게서 구입한 것과는 비교가 안된다”고 평가했다. 2007년에는 두 차례에 걸쳐 국립민속박물관에도 태국 관련 자료, 아시아생활문화 관련 필름 1만700여점을 기증했다.

가네코 컬렉션의 아시아 칠기 유물. 세계적인 명품으로 꼽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가네코 선생의 기증으로 아시아 유물을 대폭 확충하며 박물관의 격을 높였다. 한국문화를 아시아문화와 비교해 거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게 된 것도 큰 성과다. 또 다양한 전시회 기획이 가능해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가네코 기증품을 중심으로 2003년 7월 ‘가네코 가즈시게 기증 아시아 민족 조형품’ 전시회, 2010년 ‘흙으로 빚은 아시아의 꿈’ 전시회, 2012년 ‘아시아, 나무에 담긴 이야기’ 전시회를 열었다. 전문가들은 ‘아시아의 목공예, 복식문화, 불교미술, 민간신앙 등을 주제로 한 전시회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가네코실에 한 관람객이 들어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가네코실에 아시아 각국의 목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이 이어지면서 가네코 컬렉션의 가치를 저평가했던 일본에서의 관심도 높아졌다고 한다. 규슈박물관,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이 기증을 받았다. 베트남 하노이 민족학박물관에도 가네코 선생의 기증품이 전시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관 2층에 ‘가네코실’을 만들어 소중한 뜻을 기리고 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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