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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르포] "회사·마을 다 죽게 생겨… 청산만은 피해야"

입력 : 2016-05-27 19:22:27 수정 : 2016-05-27 23: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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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 가는 STX조선 “이제 회사도 망하고 함께 더불어 살았던 주민도 죽게 됐습니다.”

STX조선해양이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27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죽곡동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기계소리가 귀청을 때리고 있었다. 하지만 공장은 물론 인근 마을의 분위기는 완전 초상집 그 자체였다.

회사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소문까지 흘러나오면서 근로자들의 표정은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이들은 참담한 모습을 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작업장으로 옮기고 있었다.

조선소가 있는 주곡·수치마을에는 현재 100여가구 2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식당 10여곳이 근로자들을 상대로 횟집 등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그동안 경기불황으로 근로자들의 발길이 줄기 시작하면서 한 두곳씩 문을 닫기 시작해 지금은 4곳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서 자매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마을 부녀회장 배정숙(60)씨는 “이제 우리 식당도 문을 닫아야 할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며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앞으로 어떻게…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27일 조선소 근로자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가고 있다.
창원=연합뉴스
배씨는 “지금까지 그럭저럭 STX조선소 근로자를 상대로 식당을 꾸려 왔으나 며칠 전부터 법정관리인지 뭔지 하는 우리가 이해 못할 말이 퍼지면서 자칫 조선소가 망할 수도 있다는 청천벼락같은 소문이 돌고 있다”면서 “오늘은 그 말이 실감나듯 저 큰 공장이 초상집 분위기 속에 잠겨버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주곡·수치마을 통장 이규업(64)씨도 “이제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10년 전부터 추진해와 이제 곧 실시될 마을 주민들의 이주사업도 물 건너갈 위기로 내몰렸다”고 힘없이 말했다. 이씨는 “지금까지 조선소와 마을 간의 생활불편 갈등이 수차례 있었으나 모두 원만하게 처리돼 이제 새로운 살림을 꾸려나갈 이주단지로 이사를 하려고 했는데…” 하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STX진해조선소에는 현재 5600여명의 직영 및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로 인한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엄청나다. 특히 매월 월급 지급날에는 진해는 물론 인근 창원까지 업소들이 특수를 누렸다.

조선소에서 20여㎞ 떨어진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 모 노래주점 주인 박모(49)씨는 “매월 하순만 되면 회색의 STX조선소 작업복을 입은 손님들이 삼삼오오 몰려와 만만찮은 매상을 올렸다”며 “갑자기 법정관리 운운하는 언론 발표에 손님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날도 선박용 철판과 부품 등을 실은 트레일러들은 2차선 폭 15m 정문을 통해 드나들고 작업복 차림의 근로자들이 오가지만 거리의 활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게 인근 주민의 설명이다.

한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 박모(52)씨는 “곧 아들이 대학에 들어갈 나이인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법정관리로 들어가면 그동안 일한 임금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몰라 집에 가면 아내 보기가 민망하다”고 말했다.

고민철 금속노조 경남지부 STX조선해양지회장은 “얼마 전부터 법정관리 움직임이 포착돼 오다 이제는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라고 말했다. 노조도 “청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고 회사를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며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강도 높은 조직 축소와 인력감축, 임금 삭감 등 살을 깎는 아픔이 동반되겠지만 노동자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2011년 연결재무제표 기준 매출 11조961억원, 영업이익 5981억원을 각각 기록하고 수주잔량 기준 세계 4위 조선소의 명성을 차지했던 STX조선소가 이제 최악의 수순을 밟고 있다. 하지만 조선소나 지역민은 최악의 청산은 피해야 한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창원=안원준 기자 am33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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