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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된 청소부… “그림은 마음의 정원 일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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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30 21:02:46 수정 : 2016-06-30 21: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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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미술대전 문인화 최우수상 받은 동해시 환경미화원 김복수씨 난초는 그려도 향기는 그리기 어렵네, 꽃다운 향기가 바람을 탄다. 작품 속 글귀가 눈에 꽂힌다. 산더미처럼 쌓인 서예 작품과 4군자 문인화가 작업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나무에 새긴 서각 작품도 한편에 자리를 했다. 화가가 된 청소부 김복수(55)씨의 작업실 풍경이다.

강원도 동해시 그의 작업실을 찾은 시간은 오후 3시가 넘어서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된 그의 일과가 오후 3시에 끝나 시간을 맞춘 것이다. 동해시 환경미화원이 그의 본업이다. 그는 일을 마치면 작업실로 돌아와 저녁 9시까지 글씨로 손을 풀고 그림을 그린다. 작업시간을 확보하기엔 청소부가 가장 제격이라 했다. 작업실도 남양 홍씨 문중에서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무료로 쓰도록 배려해준 공간이다. 새벽부터 거리에 나서 피곤할 법 한데도 전혀 그런 기색 없이 그는 신바람 난 사람처럼 붓 춤을 추었다. 붓 아래 글 획이 덩달아 춤을 추고, 매화가 꽃을 피웠다.

“주어진 조건이 남만 못해 ‘흙수저’라고 좌절하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작가이고 싶다”는 김복수씨가 작품 속에 묻혀 있다.
그는 최근 제35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의 이름 앞에 당당히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게 됐다. 주변에서는 ‘김씨’가 아닌 ‘작가 선생님’으로 호칭을 바꿔 부른다.

가방끈이 짧은 그는 그동안 먹고살기 위해서 덤프트럭 운전에서부터 김치제조공장과 군납장류회사 등에서 몸을 쓰는 일을 했다. 15년 전부터는 환경미화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 붓과의 인연은 오래 됐다. 타관을 떠돌며 전전하던 어느 시기부터 몸이 안 좋을 때면 고향인 동해시로 내려와 몸을 추스르곤 했을 때 붓질은 쾌유의 약이 됐다. 무병에 걸린 이가 신내림을 받으면 낫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이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돼야겠다는 생각도 컸다.

“어린 시절 작은아버지가 서예를 하시던 모습이 제 가슴속에서 선하게 꿈틀거렸어요. 서예학원을 찾아가 붓을 들었지요.”

그에게 서예는 거창한 예술이 아니라 인생에서 또 다른 ‘맛’이었다.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한 가지 서체를 터득하면 마치 주어진 과제처럼 다음 서체에 도전하게 됐다. 청소부 주제에 너무 고급스러운 취미가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도 다반사였다. 붓질이 그림이 되는 삼매경이 모든 시선을 개의치 않게 해주었다.

붓질은 오랜 시간을 통해서 완성되어지게 마련이다. 영월에서 전각 박물관을 열었던 서용철 선생을 비롯해 심종보, 박채성 선생 등이 서예와 전각, 서각은 물론 문인화까지 배움의 목마름에 물이 되어 주었다.

“눈앞에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은 제겐 기쁨이자 위안이었지요.”

그도 처음엔 거리에 나서 청소를 할 때 아는 사람 만날까 두려워서 돌아서 기도하고 골목에 숨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류시화가 번역한 ‘성자가 된 청소부’책을 펴들게 됐다. 교회와 절, 사원이 있는 거리를 청소했던 자반이 또 다른 스승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행위가 부끄럽거나 거대한 일로 자위하는 가치판단조차도 초월한 모습이 가슴을 울렸다. 

새벽 청소에 나선 김복수씨는 “힘든 세상에 자신의 삶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창피하다는 생각조차도 욕망의 일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욕망은 빠지기 쉬운 함정이지요.”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동정심과 친절과 남을 돕는 일조차도 욕망의 일종이란 차원에서 들여다 보니 마음자리 둘 곳을 알게 됐다.

“진정한 성자 자반을 위해 어떤 기념비도, 어떤 사원이나 교회도 그의 이름으로 세워지지 않았지요, 그러나 그를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은 가슴속에 자반 이름으로 된 사원 하나를 간직하게 됐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과 용기조차도 자기만족이나 환상일수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 행여 그런 자부심 조차 더 큰 욕망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부는 제게 자유를 선물했습니다. 출세와 직위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지요. 가장 밑바닥에 위치해 보니 비로소 세상이 제대로 보이는 것 같아요.”

이제 그에게 빗자루가 붓이 됐다. 빗자루가 쓸고 지나간 자욱이 글씨가 되고 그림이 됐다. 모든 것이 한 폭의 그림이요 삶의 채색이었다. 도로변의 풀 한포기 꽃 한송이 모두가 그림의 소재로 다가왔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것이다. 청소 빗자루를 붓 삼아서 마음의 도화지 위에 자신만의 삶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그의 수첩엔 성자 자반이 남긴 글귀가 좌우명 처럼 쓰여 있다. ‘집안에 갇힌 것이나 왕궁에 갇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느 곳에서나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은 한결같다. 완전한 자유를 얻으려면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나는 평화의 바다에서 마음을 쉬리라.’ 그의 요즘 삶이 그렇다.

“제게 그림은 마음의 정원을 일구는 작업입니다. 청소부라는 구체적인 경험에서 우러나는 시각적 감수성을 가꾸고 싶어요.”

회화가 시각적 감수성을 버리고 사변으로 달아나버리면, 사변이 시작되는 그 자리에서 회화는 사망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화가가 흥미로워하는 것들에 심미적 관심을 기울일 때 의미는 생성되게 마련이다.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충동이 없을 때 작가들은 말을 앞세우게 됩니다. 나만의 예술론을 쓰기보다 구체적인 경험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이유죠.”

그는 예술의 한계를 인정하기 보다 회화로서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선택한 예술의 한계 안에서 분명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리라 확신하고 있다.

“회화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지요. 그것은 추상을 형상의 소멸로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추상이란 밖으로 꺼낸(抽) 형상(象)이지 형상의 소멸이 아닙니다.”

그는 필묵에 형상을 부여하되 추상과 구상을 칼같이 구분하지 않는다. 어떤 형상이 사람인지 사물인지 알 수 없어도 애써 명료화 하기 보다, 그 형상이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키는지는 감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저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을 그릴 때는 언어와 관념을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감(性感)을 표현한 감성도 정신성과 다르지 않고, 영성과 인성도 서로 대립하지 않고 그림에서 하나로 융합될 수 있다. 그림에서 몰아낼 것은 개념과 관념이라는 것이다.

“저의 생각이 붓 아래에서 감성으로 변모하지 못하면 실패작이 됩니다.”

그는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메모를 해두었다가도 일단 붓을 잡으면 메모를 멀리 밀어 놓는다.

“붓을 들기 전에 가슴이 숲으로 우거져 있지 않으면 풀 한 포기도 제대로 그릴 수 없습니다. 붓을 움직여 형상이 분명해지면 미련 없이 붓을 놓아야 합니다.” 물감이 마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더 손을 보려고 했다간 그림 전체를 망쳐버리기 십상이다. 인생도 과한 욕심으로 망치게 되는 이치와 같다.

그에겐 그림은 내면과의 소통의 매개체다.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바라보게 해주는 통로라 할 수 있다.

“제 글씨와 그림은 저의 자화상이지요.”

그는 ‘성자가 된 청소부’를 떠올리게 해주는 ‘화가가 된 청소부’다.

동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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