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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좌왕' 맞춤형보육 시행 첫날…"이런 막무가내 정책이 어딨나"

입력 : 2016-07-01 14:16:26 수정 : 2016-07-01 14: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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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시간·간식 등 종일반과 차별될 수밖에 없어"
종일반 등록하기 위해 가짜 재직증명서 제출하기도
"어린이집에서 종일반 선호…재직증명서 확인 안 해"
"맞춤형 보육 때문에 죽어나는 건 어린이집 교사예요. 출근은 빨라지고 퇴근은 늦어졌는데 수당은 또 없고….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기에는 현실이 참 암울합니다."(서울 잠실 어린이집 교사 이OO씨)

"순진하게 전업주부라고 밝히고 '맞춤반'에 등록했어요. 내 아들 친구들은 다 '종일반'인데, 이러다가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구박을 받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네요."(용인 전업주부 김OO씨)

맞춤형 보육 시행 첫날인 1일, 서울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평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린이집 교사와 학부모들의 정부 정책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이 상당했다.

서울 잠실의 한 어린이집 교사 이모(31)씨는 이날 오전 6시께 집을 나서서 어린이집에 출근했다. 종일반 아이들은 앞으로 오전 7시30분부터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른 시간 어린이집을 찾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맞춤반'과 다름없이 오전 9시께가 돼서야 하나둘 아이들이 등원했다.

이씨는 "오늘(1일) 종일반 시행 첫날이라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했지만, 학부모들이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했다"며 "출근 시간은 빨라지고 퇴근 시간은 늦어지는데 이에 상응하는 수당도 없다. 교사들만 죽어나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서울 서대문의 한 어린이집 원장 최모(51)씨도 정부 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맞춤반 아이들 인원이 적어 종일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차별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최씨는 "3시 이후는 간식 시간인데 맞춤반 아이들은 간식도 못 먹고 집에 가야 한다"며 "아이 엄마가 늦게 데리러 오면 간식을 먹여야 하는데 '넌 맞춤반이니깐 간식 없어'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 다 내 자식 내 손주 같은 아이들인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맞춤반과 종일반 낮잠시간도 다르게 운영해야 하나 걱정"이라며 "이러다 보니 선생님들만 더 힘이 들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어 "부모의 입장에서도 아이가 (일찍 집에 간다고) 차별받는 일이 생기면 화가 날 일"이라고 덧붙였다.

최씨는 "맞춤형 보육 정책은 분명 잘못됐다"며 "이럴 거면 전업주부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라고 하든가 아니면 이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자녀를 둔 부모들도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워킹맘인 진모(35)씨는 "오전 7시30분부터 아이를 맡길 수 있다고 하지만 선뜻 이른 시간 아이를 맡기기는 조심스럽다"며 "종일반을 신청해 12시간 아이를 맡길 수는 있지만, 내 아이 혼자 늦게까지 남아있는 건 아닐까 싶어 당분간은 시부모님 도움을 계속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업주부는 "자영업을 하는 형부한테 부탁해 '재직증명서'를 만들었다"며 "어린이집에서도 크게 확인을 안 하고 종일반을 등록해줬다"고 했다. 이어 "만약 맞춤반에 내 아이 혼자 들어가 있어 남들 먹는 간식도 못 먹고 있으면 너무 화가 날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그랬다"고 털어놨다.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맞춤반에 보냈다가는 자녀가 미움을 산다' '어린이집에서는 수익성이 줄어드는 맞춤반 등록 아이를 싫어한다' 등 내용이 확산되면서 종일반 등록을 위해 가짜 재직증명서까지 구하고 있는 것이다.

용인에 사는 전업주부 김모(35)씨는 "순진하게 맞춤반에 등록한 게 마음에 걸린다"며 "어린이집 입장에서도 맞춤반보다 종일반을 더 선호할 텐데 이러다 내 아이가 구박받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우려했다.

전업주부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가짜로 꾸며 재직증명서를 내도 제대로 확인도 안 하면서 무슨 정책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서울의 한 어린이집 교사는 "우리 어린이집 원장만 하더라도 슬쩍 종일반을 권유하고 있다"며 "실제로 아이를 돌보는 시간은 비슷한데 맞춤반의 경우 아이 한 명당 수익(약 2만6000원)이 줄어드니 아무래도 종일반을 원하는 눈치"라고 귀띔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 변경에 불만을 호소하기도 했다.

정부는 맞춤형 보육 정책 시행 단 하루 전에 종일반에 편성되는 다자녀 기준을 완화했다. 애초 정부는 맞벌이 부부와 3자녀 이상 다자녀 가구 등을 종일반에 편성한다고 계획했지만, 지난달 30일 36개월 미만 2자녀 가구도 종일반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서울 화곡동에 사는 두 자녀의 부친 이모(34)씨는 "오늘부터 보육정책이 바뀐다고 하는데 정확한 정보를 알 수가 없다"며 "어린이집에서 공지문이 날아오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설명이 돼 있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경기 이천에 사는 한모(31)씨는 "하루만에 정부가 종일반 보육 대상을 확대하면서 내 자녀도 종일반을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됐다"며 "그런데 부랴부랴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이미 정원이 꽉 찼으니 대기해 달라'고 하더라. 이런 막무가내 정책이 어디 있냐"고 한숨을 쉬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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