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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웰컴 투 파타고니아] 산과 호수, 구름과 빙하가 만든 절경에 말을 잃다

입력 : 2016-08-04 14:00:00 수정 : 2016-08-03 20: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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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antada! (만나서 반가와요)
오르지 않고 바라만 보기에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봉우리.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뒤로하고 엘 칼라파테를 떠난 버스는 3시간여를 달려 늦은 밤, 엘 찰튼에 도착했다. 호텔을 예약하지 않고 도착한 터라 숙소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낮 시간이라면 안내센터에서 정보를 얻거나 편안하게 산책하며 숙소를 얻을 테지만 주위는 어둠으로 가득하다.

그동안 여행에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늦은 밤 낯선 곳에 도착한 여행객에게 가장 유용한 도우미는 역시 택시라는 것이다. 지역 지리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숙박업소들과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약간의 운이 따라야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다행히 엘 찰튼에서는 운이 좋았다. 터미널에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 가운데 맘 좋게 생긴 아주머니의 택시를 탔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친 파타고니아의 아름다운 산들이 함께하는 아르헨티나의 작은 마을 엘 찰튼은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중심지다.

호텔을 예약하지 않은 상황을 설명하고 추천할 만한 숙소로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사 아주머니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더니 휴대전화로 통화를 시작한다. 남미 특유의 왁자지껄한 스페인어 통화가 몇 차례 지나고 “운이 좋네”란 말과 함께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호텔 몇 개를 지나 자그마한 호텔에 도착했다. 예약을 못한 탓에 내심 비싼 가격을 지불할 각오가 무색하게 안락한 분위기의 호텔은 가격도 저렴했다.
호텔문에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여행객들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로비 겸 식당에는 이미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모두 오랜 준비와 각오를 한 뒤, 긴 시간을 비행기로 날아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여행책을 보면서,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다음날 나설 트레킹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뜬 분위기다. 함께 어울려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버스 여행의 피곤함에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피곤함 덕분인지 맑은 공기 덕분인지 눈을 감기 무섭게 찾아온 잠은 뒤척임 한 번 없이 아침까지 이어졌다. 문 밖의 시끄러움이 아침을 알려준다. 잠자리에서 개운한 몸을 일으켜 식당으로 향했다. 빵과 치즈, 커피 등 간단한 아침식사이지만 창 밖으로 가득한 햇살과 멀리 병풍처럼 둘러친 파타고니아의 아름다운 산들이 함께하는 아침은 어느 성찬보다 풍요로웠다.
호텔에서 여행객들이 빵과 치즈, 커피 등 몇 가지로 차려진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작은 마을 엘 찰튼은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빙하국립공원의 남쪽 입구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가 있는 엘 칼라파테, 북쪽의 입구는 피츠로이 봉우리로 향하는 엘 찰튼이다. 이곳에서 피츠로이와 세로토레로 향하는 트레킹이 시작된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2∼3일에 한 번 버스가 다니던 오지마을은 이제 바람과 땅과 하늘을 품고 자리 잡은 트레커들의 이상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환영 간판에는 ‘트레킹의 국제 수도(capital nacional del trakking)’라는 문구가 이 작은 마을의 자부심을 말해 주고 있다.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 호수를 이루고 그 에너지를 받아 푸르고 울창한 숲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과 호수, 구름과 빙하가 만들어내는 풍경.

엘 찰튼에서 시작되는 트레킹은 빙하를 머리에 이고 상어 이빨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는 피츠로이와 세로토레 봉우리를 향해 가는 두 가지 루트가 중심이다. 해발 3405m의 피츠로이는 남부 파타고니아 최고봉으로 전문 산악인들에게도 정복이 매우 어려운 산으로 악명이 높다. 세상에서 가장 오르기 어려운 봉우리라는 세로토레 역시 3128m의 높이로 칼날 같이 솟아 있다. 그러나 오르지 않고 바라만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봉우리다. 물론 트레킹 코스는 해발 1400m의 비교적 완만한 산기슭을 따라 두 봉우리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까지 이어져 있다. 고산병의 걱정이나 전문적인 등반 기술 없이도 자연의 위대한 걸작을 감상하기에 충분하다.
엘 찰튼에서 시작되는 트레킹 코스는 비교적 완만한 산기슭을 따라 산봉우리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까지 이어져 있다.

화창한 아침 햇살을 맞으며 길을 재촉한다. 파타고니아의 변화무쌍한 날씨가 언제 심술을 부릴지 몰라 초조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푸른 하늘도 금방 먹구름으로 가득 채우는 변화무쌍한 날씨에 대한 주의를 들었기에 지금의 화창함이 마냥 고맙게 느껴졌다.

아침 햇살을 등에 지고 나서는 길은 세로토레 봉우리를 향해 가는 코스다. 피츠로이 강을 따라 토레호수 전망대를 지나 세로토레봉이 보이는 마에스트리 전망대까지 왕복 6시간에서 8시간 코스다. 어제 미처 보지 못한 아기자기한 마을 길을 지나자 어느새 풍경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뀌어 간다. 파타고니아의 세찬 바람을 맞는 건조한 평원에는 앙상한 맨살을 드러낸 나무들의 군락을 이루다가도,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 호수를 이루고 그 에너지를 받아 성장한 푸르고 울창한 숲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람은 가벼워졌다 거칠어졌다를 반복하며 물감을 풀어놓은 듯 파란 하늘 위의 구름을 여러 형상으로 만들어낸다. 그 모두를 굽어보듯 세로토레 봉우리는 하얀 빙하와 구름을 두르고 산신령처럼 서 있다.
거친 바람을 뚫고 오르는 길은 숨을 가쁘게 하지만 하늘과 산봉우리가 만드는 풍경은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길은 대부분 완만하고 평탄하지만 거친 바람을 뚫고 오르는 길은 숨을 가쁘게 한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오르니 눈앞에 푸른 호수가 펼쳐진다. 산 위에 걸쳐 앉았다가 그 품을 떠나 녹아내린 빙하가 아름다운 토레호수를 이루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호수 너머에 구름을 두르고 칼날같이 서 있는 세로토레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하다.

산과 호수, 구름과 빙하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한동안 시선을 놓아주지 않는다. 거센 바람을 버티고 선 세로토레는 구름이 움직이는 데로, 하늘빛과 물빛이 변하는 데로 매순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는 절경은 현실성 없는 아름다움으로 우리 일행들을 매료시킨다. 왜 그렇게 저 높고 위험한 봉우리를 오르려 하는지, 기어코 그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엘 찰튼의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

바람이 차가워지고 체온이 식어가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본다. 마을로 다시 내려오는 길은 자꾸 뒤를 돌아보며 세로토레의 아름다움을 확인하는 동작의 반복이었다. 마을에 돌아오니 하늘은 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호텔 사람들의 왁자지껄함 속에 묻힌 뒤에야 현실세계로 돌아온 느낌이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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