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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분간 단 두 명의 배우, 그럼에도 허전하지 않다

입력 : 2016-08-14 22:38:56 수정 : 2016-08-14 22:3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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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사진)를 보고 나면 손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모바일에 휩쓸려다니는 일상에서 잊고 지낸 가치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겉핥기로 복고를 자극하는 건 아니다. 담백하면서 유쾌하고, 비어있으면서 꽉 찬 작품이 자연스레 삶의 보폭을 반추하게 만든다.

원작은 진 웹스터의 유명한 동명 소설이다. 1900년대 초 고아 제루샤 애벗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유한 후원자 저비스 펜들턴의 도움으로 대학을 다니고 소설가로 등단하는 내용이다. 고아 소녀와 부유한 후원자의 성장담이자 연애사다. 초반에는 ‘부유하고 키 크고 젊은 조력자 남성’이라는 세간의 환상을 자극하는 공식이 조금 낯간지럽게 느껴진다. 배우들의 훌륭한 외모 역시 이런 환상을 강화한다. 바꿔 말하면 로맨스의 공식에 충실하다. 그러나 동시에 고아 소녀의 외로움과 성장, 독립을 녹여내고 두 인물이 두려움을 넘어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을 담음으로써 이야기에 깊이를 부여한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연출이다. 무대에는 눈을 사로잡는 기술도, 든든한 앙상블도 없다. 단 두 명의 배우가 120분을 채운다. 이들은 서로에게 쓴 편지를 읽고 혼잣말을 하며 극을 이끈다. 그럼에도 허전하지 않다. 사랑스럽고 유쾌하다. 적절히 긴장감 있는 전개는 지루할 틈이 없다.

거의 퇴장 없이 연기하는 배우들의 공로도 크다. 이들은 설렘, 좌절, 갈등, 기대감 같은 다양한 감정을 쥐락펴락 풀어놓는다. 화려한 춤이나 오락 거리 없이 두 사람이 이야기를 끌고 가기에 관객은 오롯이 인물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다. 노래 못지않게 대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점에서 이 뮤지컬은 상당히 연극적이다. 거의 변화 없는 무대 역시 마찬가지다. 무대에는 나무 향기가 배어나는 듯한 책꽂이와 창문, 책상만이 놓인다.

국내 초연인 이 작품은 뮤지컬 ‘레미제라블’로 토니상 최고 연출상을 수상한 존 캐어드가 연출하고 폴 고든이 작곡했다. 고든은 이 작품으로 토니상 최고 작곡·작사상을 받았다. 제루샤 애벗은 이지숙, 유리아, 저비스 펜들턴은 신성록, 송원근, 강동호가 연기한다. 10월 3일까지 서울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공연한다.

송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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