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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나간 사랑을 되살려 바꿀 수 있는가

입력 : 2016-08-25 21:03:31 수정 : 2016-08-25 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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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슐링크 장편 ‘계단 위의 여자’ 한국판 출간 헤어진 지 40년 만에 연인을 만난다면, 만나서 열나흘을 같이 보낸다면, 그 옛날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을지 서로 상상력을 동원해본다면, 늙은 몸끼리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을 나눈다면, 어느 일방이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죽음이 그들을 드디어 헤어지게 한다면, 당신은 이틀에 당신만의 어떤 내밀한 서사를 채울 수 있을까.

‘책 읽어주는 남자’로 세계적인 문명을 날렸던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72)는 이 플롯에 ‘계단 위의 여자’(시공사)를 채워 넣었다. 소설가 배수아가 번역한 이 장편은 용감하게 사랑하지 못한 이들의 회한을 부추기는 탄식의 서사처럼 읽힌다.

‘책 읽어주는 남자’로 세계적인 문명을 날린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 그는 6년 만에 펴낸 신작 ‘계단 위의 여자’에서 그림을 모티프로 늙지 않을 사랑을 모색했다.
시공사 제공
사업가 페터는 화가 카를을 불러 자신의 젊은 아내 이레네를 그림으로 그리게 한다. 그네가 계단을 내려오는데 오른발은 계단의 가장 아래 칸에 닿았고 왼발은 아직 위쪽에 있지만 다음 걸음을 막 떼기 직전이고 여자는 벌거벗었다. 그 그림의 모델로 섰던 아내는 화가에게 끌려 사업가 남편을 떠났다. 전 남편은 그림을 훼손하여 복원을 명분으로 화가를 집으로 불러들인다. 이 분란 과정에 변호사로 개입하는 이가 이 소설의 중심 화자인 ‘나’다. 젊은 시절의 나는 자신의 아내와 그림을 맞바꾸자는 협상을 하는 화가와 사업가 사이에 끼어들었다가 의뢰인을 배반하고 그림과 함께 그 여자 이레네를 빼돌리는 데 일조한다.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던 이레네의 꾐에 빠졌던 것인데 그길로 그네는 나와의 약속을 어기고 종적을 감춘다. 40년이 흘러 사라졌던 그림이 호주의 갤러리에 대여 전시의 명분으로 등장한다.

세계적인 화가로 자리를 잡은 카를의 작품 목록에만 존재하던 그림이 전시장에 나타나자 나와 이레네의 옛 남자들은 그네가 기거하는 섬으로 찾아든다. 세속적인 타산과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업가와 화가는 그림을 내놓으라고 그네를 윽박지르다가 이미 기부된 사실을 알고 예전의 사랑일랑 오래전 바스러진 에피소드로 규정하고 떠나간다. ‘나’ 또한 세상의 흔하고 일방적인 사랑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일상이었는데 늙은 이레네와 옛날을 회고하고 돌이키는 과정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상투적인 인간이었는지 서서히 깨닫게 된다. 이레네는 말한다.

“젊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시 회복되리라는 느낌이에요. 틀어지고 어긋나버린 모든 것이, 우리가 놓쳐버린 모든 것이, 우리가 저지른 모든 잘못이. 더 이상 그런 감정이 없다면, 한 번 일어나버린 일과 한 번 경험한 일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된다면, 그러면 우리는 늙은 거예요.”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트로피’로 생각하는 사업가 남편과, 자신을 영감의 원천인 ‘뮤즈’로만 이용한 화가와, 마치 ‘기사’처럼 나타나 공주를 구원하는 캐릭터로 착각하는 ‘나’를 포함한 남자들에게서 떠나 목숨을 건 사랑을 갈구했던 이레네는 테러리스트를 거쳐 동독에 은거했다가 통독 이후 인생 후반은 호주의 한 섬으로 탈출해 소외된 아이들을 돌보며 생을 소진해왔다. 그네는 섬에 마지막까지 남은 나에게 “한 여인 안에서 모든 것을 발견하고, 모든 것을 재발견”하려면 더 나이를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3부에 걸쳐 짧은 장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이 소설은 산문시처럼 읽힌다. 긴박감 넘치는 서사가 아니라 늙어서 다시 만난 남녀의 관념적인 대사로 이어져 지루하게 전개될 수 있는 단점을 스타카토 산문으로 이어내는 기지를 발휘한 셈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누구나 삶의 어느 시절을 스쳐간 이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젊든 늙든 과거형 사랑은 누구에게나 존재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복원해 수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젊음의 관건이라니, 이 기준을 따르자면 젊어서 이미 늙어버린 이도 있고 늙어서도 여전히 가능성이 남은 이도 있을 수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에마, 계단 위의 나체’라는 그림을 모티프로 삼았지만 실제 화가와 작중 화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소설 속에서 늙은 이레네는 그 시절 그네처럼 나신으로 계단을 내려온다. “생의 바로 이 순간, 그녀는 사랑 이외에는 줄 것이 없으며, 나 또한 그러하도록 초대하고 싶다고.” 사십년이 흘러 죽어가는 그네의 몸을 계단 아래에서 처음으로 안은 ‘나’는 “지친 아름다움이라도 역시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인 것을… 그녀는 용감하게 삶을 살아왔고 나는 겁내면서 살아왔다”고 에필로그에서 되뇌인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늙은 사랑의 노래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아닐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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