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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김밥’은 왜 카드결제가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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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27 10:26:48 수정 : 2016-08-28 09: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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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점포 단말기 없는 곳 부지기수/ 수수료 부담에 ‘현금장사’ 고집…소비자만 불편/ 현금영수증 발급도 거부…전통시장 활성화 막아 “거, 상황이 좀… 거시기하더라구요.”

직장인 이모(27)씨는 최근 겪은 일을 떠올리며 뒷통수를 긁적였다. 지난달 이씨는 말로만 듣던 ‘마약김밥’을 먹기 위해 동료 여직원과 함께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을 찾았다. 시장 한복판에 쭈욱 늘어선 노점 중 한 곳을 골라 김밥과 떡볶이, 어묵 등을 시켰다.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었지만, 오랜만에 찾은 재래시장 특유의 분위기에 취해 맥주도 한 병 들이켰다.
우리 재래시장은 아직 ‘정(情)’이 있는 장소기도 하다. 시장을 찾은 어르신들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술을 나눠주고 있는 모습.

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던 이씨의 이마엔 이내 식은땀이 맺혔다. 1만8000원어치 음식을 먹고 카드를 내밀었지만 해당 업소는 카드결제가 불가하다고 했기 때문. 가게 주인은 입을 꾹다문채 이씨를 향해 두 손으로 엑스(X)자를 그려 보였다. 이씨는 “현금이 3000원밖에 없는데 계산을 보채 결국 동료에게 손을 벌렸다”면서 “요즘 세상에 카드결제가 안 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며 얼굴을 붉혔다.
 
추석 명절을 보름여 앞둔 가운데 신용카드 단말기를 비치하지 않거나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하는 재래시장 점포들이 적지 않아 소비자들이 발걸음을 망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변하는 유통 환경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7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전통시장의 카드 취급율은 2014년 60.8%였다. 2011년(50.2%)에 비하면 크게 높아진 수치지만, 핀테크나 스마트페이 등 이른바 ‘3세대 결제수단’까지 등장하는 결제 환경을 고려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영세상인들은 이처럼 ‘현금 장사’를 하는 이유로 높은 결제 수수료를 꼽고 있다. 카드를 받지 않는 대신 주변보다 1000∼2000원가량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해 결과적으로 비슷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불편함 때문에 발길을 돌리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성동구에 사는 직장인 정모(30)씨는 “지갑을 잘 안 갖고 다니는데 시장에 가려면 현금을 따로 인출해 챙겨야 한다”면서 “집 바로 앞에 있는 재래시장보다 거리가 좀 있지만 대형마트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장진흥공단이 시민 535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전통시장을 꺼리는 이유(중복응답)로 63.2%가 ‘편의시설 부족’을 꼽았지만, ‘결제의 불편함’과 ‘현금영수증 미발급’을 이유로 든 응답자도 각각 23.8%와 12.3%에 달했다.
‘불금’이었던 26일 찾은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은 손님들로 북적였지만 시장 내 노점 대부분 카드결제나 현금영수증 발급이 불가능했다.

재래시장에서 1만원 이하 ‘소액 결제’를 하면 ‘눈칫밥’을 먹는 경우도 다반사다. 경기도 광명에 거주하는 주부 한모(47)씨는 “시장 안 음식점에서 8000원어치 음식을 먹고 카드를 내밀었는데 면전에서 ‘에이씨…’라는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면서 “‘1만원 이하는 카드금지’라는 팻말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내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데도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용카드 가맹점이 수수료 등을 이유로 카드결제를 거부하는 것은 여신전문금융법 상 명백한 위법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카드 단말기를 무상으로 설치해 주고 수수료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세원 노출 문제 등으로 인해 참여율은 높지 않은 형편이다. 지난달 서울시는 시내 재래시장에 카드 단말기를 900여곳 설치해줬다고 밝혔지만, 단말기 미설치 점포는 1만6000여곳에 이른다.

서울시 관계자는 “카드결제 거부 등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도 “현행법 상 상인들에게 단말기 설치를 강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상인연합회 등에 카드 단말기 보급율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등 ‘재래시장 현대화’를 위해 고심 중”이라고 밝혔다.

경북대 지역시장연구소 장흥섭 소장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현금영수증 발급 등 신용거래는 필수”라며 “카드결제 거부 혹은 단말기 부재는 결국 소비자의 발걸음을 대형마트로 돌리게 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빠르게 변화하는 유통 환경과 소비자들의 기호를 따라가려는 노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글·사진=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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