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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웰컴 투 파타고니아] 하찮은 미물마저도 절경으로 빚어낸다

입력 : 2016-09-29 14:00:00 수정 : 2016-09-28 21: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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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트렉의 셋째 날… 파이네 그란데 산장까지
햇살 아래 반짝이는 쿠에르노스 봉우리들.
창밖으로 파타고니아의 새벽 공기가 매섭게 몰아친다. 다행히 숙소 내부는 장작불 온기가 남아 있다. 창문을 열어 차가운 바람으로 남은 잠기운을 몰아낸다. 쿠에르노스 봉우리는 이제 막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오렌지 빛깔로 물들어 있다.
쿠에르노스 봉우리가 막 떠오르는 햇살을 받아 오렌지 빛깔로 물들어 있다.

이른 시간이지만 출발을 서두른다. 오늘 여정은 W 트렉 가운데 가장 길고 힘든 코스다. 로스 쿠에르노스 산장에서 이탈리아노 야영장까지 5㎞, 이탈리아노 야영장에서 프란세스 계곡을 따라 브리타니코 전망대까지 5㎞, 다시 이탈리아노 야영장까지 되돌아 내려와 파이네 그란데 숙소까지 7.5㎞를 걸어야 한다. 전체 22.5㎞의 거리를 어림잡아 11시간 이상 걸어야 한다. 더구나 이탈리아노 야영장에서 프란세스 계곡을 따라 전망대까지는 험한 돌길이다. 전망대를 포기하고 이탈리아노 야영장에서 파이네 그란데 숙소로 곧바로 이동하면 5시간 정도의 거리이지만 이곳까지 와서 브리타니코 전망대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행객들이 빙하가 녹은 호수를 바라보며 경치를 즐기고 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산봉우리의 오렌지 빛깔이 탐스럽게 자리 잡고 있을 때 산장을 떠났다. 새벽길이지만 마음은 가볍다. 이탈리아노 야영장에 도착하니 곁에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산장에 짐을 맡기고 왕복 여정으로 프란세스 계곡을 따라 브리타니코 전망대로 길을 나섰다. 바위를 거슬러 다녀와야 하는 길이기에 최대한 짐을 덜어내고 바람과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옷으로 갈아입는다. 야영장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낸 트레커들은 이제야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파타고니아 밤하늘에 취해 늦게 잠들었는지 몇몇 텐트는 아직도 조용하다. 파타고니아 최대 풍경 중 하나는 하늘이다. 
파타고니아 최대 풍경 중 하나는 하늘이다. 하얀 구름 사이로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파란 하늘과 파스텔톤의 빙하 녹은 호수가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하얀 구름 사이로 물감을 풀어놓은 듯 파란 하늘은 햇빛에 따라 온갖 파스텔톤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까맣게 물든 밤에는 하늘 가득 온갖 보석을 뿌려놓은 듯 별천지가 펼쳐진다. 하루 종일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 하늘이다.

짐을 비우니 혹시나 무언가를 잊은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어깨는 짓누르는 무언가를 덜어내 몸이 가볍다. 가벼우니 행복하다. 삶도 이럴 듯싶다. 비우면 불안하고 채우면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에 눌린다. 덜어내고 만날 수 있는 작은 만족을 받아들인다면 행복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야영의 하는 트레커들은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산행을 해야 한다. 야영을 하는 트레커들의 용기가 부러우면서도 무거운 배낭이 조금은 안쓰럽다.

앞서 가는 젊은 여성들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간다. 야영을 하는 트레커들 배낭이다. 야영을 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러우면서도 무거운 배낭이 조금은 안쓰럽다. 산언덕을 돌아서니 계곡의 다리가 무너져 있다. 돌무더기가 가득한 계곡을 조심스럽게 건너야 한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스틱에 의존해 바위 사이로 나아가는 모습이 여간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짐이 가벼운 덕에 잡아주고 끌어주면서 함께 계곡을 건넜다. 다시 길로 들어서서 눈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걸음대로 또다시 길을 나선다. 
W트렉 중 브리타니코 전망대까지 가는 코스는 가장 힘들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힘겨운 발걸음을 위로하는 프란세스 계곡의 맑은 물소리는 여행객의 힘든 여정을 위로해준다. 이 계곡은 빙하 녹은 물이 바위에 부딪히며 흐른다.
한참을 걷다 잠시 프란세스 계곡의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하얀 구름이 파란 하늘 사이를 유유히 흐른다. 바람이 지친 몸을 위로하듯 불어온다. 잠시 쉬면서 점심 도시락을 펼쳤다. 감사한 마음으로 샌드위치와 음료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쓰레기를 다시 담아 배낭에 넣은 후 길을 나선다. 한걸음 한걸음이 힘에 부친다. 흙길을 지나 돌무덤을 지나는 길이 버겁다. 힘겨운 발걸음을 위로하는 것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다. 국립공원 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이 계곡에는 빙하 녹은 물이 바위에 부딪히며 흘러간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계곡을 따라 빙하를 이고 서 있는 봉우리들도 더욱 가깝게 다가선다.
브리타니코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이네산 봉우리들이 하얀 빙하를 두른 채 병풍처럼 솟아 있다. 바람 따라 햇살 따라 모습을 바꾸는 파이네산 봉우리들의 절경은 감탄을 자아낸다.

계곡을 벗어나자 브리타니코 전망대가 나타난다. 하얀 빙하를 두른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절벽처럼 솟은 파이네산 정취에 빠져든다. 나 자신조차 하나의 풍경이 돼 미동도 없이 파타고니아의 절경 속에 묻혀 있다. 가까운 듯 멀리 자리 잡은 눈 덮인 산은 자꾸만 손짓하는 듯하다. 바람 따라 햇살 따라 모습을 바꾸는 절경에 빠져 하염없이 바라보다 문득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정신이 든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파타고니아의 검게 그을린 숲. 푸른 숲이 아닌 회색빛과 검게 타버린 가지들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내려오는 길은 더욱 조심스럽다. 이탈리아노 야영장으로 돌아와 맡겨둔 배낭을 찾은 후 다시 오늘의 목적지를 향해 길을 나선다. 한참을 걷다 보니 검게 그을린 숲이 끝없이 펼쳐진다. 푸른 숲이 아닌 회색 빛과 검게 타버린 가지들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앙상한 가지 사이를 바람만이 매섭게 휘몰아친다. 길었던 트레킹의 끝을 알리듯 언덕 넘어 햇살이 변해간다. 노을에 물들어가는 파이네 그란데 숙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생각의 조각조각들을 파타고니아 바람결에 흩날리며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한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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