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댐 인근에 있는 비목공원. 한반도를 본뜬 지도 위에 세워진 철조망과 십자가 모양의 비목, 녹슨 철모에서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
6·25전쟁이 끝난 지 10여년이 지난 후였지만, 연고자를 찾지 못한 무명 용사의 무덤이었다. 처절한 전투를 벌이던 중 간신히 시신이나마 수습한 모양새였다. 돌무더기 무덤 옆엔 녹슨 철모와 개머리판이 썩어 문드러진 카빈 소총 한 자루가 나뒹굴고 있었다.
전쟁 당시 카빈 소총은 초급 장교가 쓰던 총이었으니 초임 소대장과 같은 계급의 20대 청년이었을 것이다.
그 돌무더기는 전쟁의 포연 속에 산화한 꿈 많던 청년이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초임 소대장은 젊은 무명 용사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며 시를 썼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한명희(전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선생이 1960년대 강원 화천에서 장교로 군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시가 가곡 ‘비목’의 가사가 됐다. 문구 하나하나에 전쟁의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화천의 멋진 풍광 이면엔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숨어 있다. 6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곱게 물든 단풍이 당시의 붉음을 대신하고 있고, 치열했던 전투가 벌어졌던 곳들은 여행객들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화천댐 건설로 생긴 호수 파로호는 1951년 5월 한국군 6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을 무찌르자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며 ‘깨트릴 파(破)’, ‘오랑캐 로(虜)’를 써 ‘파로호’로 명명했다. 파로호 안보전시관 옆길로 오르면 나오는 파로호전망대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파로호전망대에 있는 기념비. |
화천댐 인근의 꺼먹다리 인근을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화천댐이 생기면서 놓인 꺼먹다리는 상판 목재 부분을 검은 콜타르로 칠해 붙여진 이름이다. 전쟁 당시 포탄과 총알에 부서진 다리 교각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
화천댐이 생기면서 놓인 꺼먹다리는 상판 목재 부분을 검은 콜타르로 칠해 붙여진 이름이다. 전쟁 당시 포탄과 총알에 부서진 다리 교각은 시간이 멈춘 듯 현재도 그대로 보존돼 있어 애잔함이 느껴진다. |
화천댐 인근에 있는 꺼먹다리도 전쟁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화천댐이 생기면서 놓인 꺼먹다리는 상판 목재 부분을 검은 콜타르로 칠해 붙여진 이름이다. 전쟁 당시 포탄과 총알에 부서진 다리 교각은 시간이 멈춘 듯 현재도 그대로 보존돼 있어 애잔함이 느껴진다.
화천에서 분단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곳으로는 평화의 댐과 칠성전망대가 있다.
평화의 댐 북측 방향을 보고 있는 여행객. |
평화의 댐 인근에 있는 비목공원. |
비목 공원에서 차로 조금만 더 오르면 평화의 종 공원이다. 평화의 종은 분쟁의 역사를 겪었거나 분쟁 중인 국가 60여개국의 탄피 37.5t(1만관)을 모아 높이 5m, 폭 3m 규모로 제작됐다. 전 세계에서 소리를 낼 수 있는 종 중 세 번째로 크다.
세계평화의 종은 분쟁의 역사를 겪었거나 분쟁 중인 국가 60여개국의 탄피 37.5t(1만관)을 모아 높이 5m, 폭 3m 규모로 제작됐다. |
세계평화의 종 상층부에 있는 동서남북을 각각 바라보는 비둘기 4마리 중 북측을 바라보는 비둘기 오른쪽 날개가 잘려 있다. 분단으로 북으로 가지 못하는 현실을 빗대 비둘기 한쪽 날개를 분리해 놓은 것이다. |
세계평화의 종을 타종하고 있는 여행객들. |
북한의 현재 모습을 보려면 북한을 지척에 볼 수 있는 백암산 자락의 칠성전망대로 가야 한다. 내비게이션에 표시도 되지 않는 곳이다. 민간인통제선(민통선)을 넘어 비무장지대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으로 산양리 군 장병안내소를 목적지로 설정해야 한다.
칠성전망대에서 북녘 땅을 보고 있는 여행객. 칠성전망대는 민간인통제선(민통선)을 넘어 비무장지대 안에 있어 내비게이션에 표시도 되지 않는다. 산양리 군 장병안내소를 목적지로 설정해야 한다. 이곳에서 출입신고를 한 뒤 정해진 시간에 인솔자와 함께 방문할 수 있다. |
백암산 자락 칠성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땅. 남쪽은 울창한 나무들로 우거진 산이 붉은빛으로 변해 가을이 한창임을 알리고 있지만, 북녘의 산은 허하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 벌목을 하다 보니 민둥산들이 이어져 있다. 산 가운데로는 북한강 지류인 금성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
화천=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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