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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헌트 일병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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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7 01:07:05 수정 : 2016-12-07 0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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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 참전한 미 해병은 개마고원 장진호에서 두 개의 적과 마주쳤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와 중공군이었다. 해병 제5연대장 레이먼드 머레이 중령이 장병들을 향해 소리쳤다. “제군들, 새벽에 이곳에서 뒤로 전진한다.” 후퇴란 없었다. 엄청난 적군이 가로막고 있는 뒤쪽으로 전진하겠다는 각오였다.

중공군의 포격과 매서운 추위는 젊은 해병들을 순순히 놓아주지 않았다. 새하얀 눈 위로 빨간 선혈이 뿌려졌다. 해병들은 언 땅에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무덤을 만들었다. 시신들을 판초에 싸서 무더기로 땅에 묻었다. 그러고는 나무기둥을 무덤 앞에 세웠다. 묘지 기록 장교가 도보로 장소를 측량하고 지도를 그렸다. 언젠가 돌아와 전우의 유해를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그들은 전우와의 마지막 끈을 놓지 않았다.

이런 미국의 정신이 65년 만에 빛을 발했다. 1951년 강원도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전사한 대니얼 헌트 일병의 유해가 얼마 전 고국으로 돌아갔다. 조국을 위한 희생을 기억하고 끝까지 유해를 수습한다는 미국 정신의 발로였다. 헌트의 유해는 고향인 애리조나주 피닉스 국립묘지에 지난 2일 안장됐다.

헌트 일병은 당시 포탄에 맞아 이미 두 번이나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는 치료를 받은 뒤 다시 자원해서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그의 나이 겨우 열여덟이었다. 동생 존과 형 찰스도 6·25전쟁에 참전했다. 이름도 생소한 나라의 자유를 위해 삼형제가 나란히 전장에 뛰어든 것이다.

눈보라 속에 장진호에서 철수하던 해병에게 종군기자가 물었다. “내가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해주기를 바랍니까?” 턱수염에 고드름을 주렁주렁 매단 해병이 말했다. “저에게 내일을 주시오.”

젊은 해병의 소원대로 우리는 내일을 부여받았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 역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친 덕분이다. 그 희생으로 얻은 자유를 우리는 어떻게 쓰고 있는가. 전대미문의 국정 농단 사태를 맞은 대한민국 구성원들이 곰곰 되새길 일이다. 오늘보다 ‘값진 내일’을 맞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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