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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우칼럼] 가정의 달 5월, 공동체 돌아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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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5-07 23:41:14 수정 : 2023-05-07 23: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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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 결혼·출산 기피 풍조로
가족과 삶의 조건 가치관 변화
기념일 많은 5월 소외층도 많아
서로 품어주는 따뜻한 마음 필요

가정의 달 5월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에 더해 근로자의 날과 성년의 날까지 가족의 의미, 어린이와 어른 됨, 나아가 노동의 숭고함까지 일깨우는 뜻깊은 시간이다. 선물 성수기 시즌이자 기발한 축하와 축복이 넘쳐나는 터라, 기업과 유통업계는 이벤트와 선물 큐레이션을 앞세워 ‘가심(家心)’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화훼업체가 플라워 용돈 박스로 부모의 마음을 흔들고, 게임업체가 게임 아이템을 앞세워 어린이와 ‘어른이(어른+어린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식이다.

하지만 가정의 달 공휴일과 기념일이 갖는 의미와 기능은 사뭇 달라졌다. 공부가 길어지고 사회 진출이 늦어지는 데다, 결혼까지 미루고 포기하는 청년층이 늘어나면서 어린이날을 보란듯 즐기는 ‘어른이’가 많아졌다. 어린이날 대신 ‘어른이날’을 외치며 선물을 받고 용돈을 받아 챙기는 청년층이 늘어난 것이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어른 됨의 경로에 중요한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 더 큰 의무와 책임을 지는 어른으로의 탈바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청년들이 늘었다. 이들에게 성년의 날이란 꽃과 선물을 앞세워 ‘티키타카’하는 하루이지, 어른 됨을 기념하고 다짐하는 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결혼 기피 풍조에 더해 자녀를 갖지 않는 ‘딩크족’이 늘어나면서 어버이날 풍속도도 바뀌는 중이다. 평생 꽃 달아드려야 할 부모는 있지만, 내게 꽃 달아줄 자식은 없는 ‘딩크족’ ‘미혼족’ ‘비혼족’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낳고 키워준 부모에 대한 감사의 시간이야 많을수록 축복된 일이지만, 나를 위로해 줄 자식, 혹은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은 허전감과 우울감을 안긴다. 언젠가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홀로 될 때, 어버이날에 느끼게 될 소외감과 고독감은 누구도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어버이로서 어버이날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건 안타깝지만 대한민국의 정해진 미래다.

이런 변화의 저변에는 수명 연장과 고령화에 더해, 결혼과 출산을 의무가 아니라 선택으로 간주하는 MZ세대의 인식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2022년 1인가구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40%를 넘어서면서, 가족과 가정에 대한 통념이 급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반려견도 가족이라는 새로운 인권 의식이 자리 잡으면서 가치관 변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승자 독식의 살벌한 생존 경쟁이 어른 세계를 압도하면서 여기에 발을 디디는 것을 꺼리는 ‘어른이들’의 두려움도 한몫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합계출산율 0.78이라는 소설 같은 현실이 펼쳐지는 배경에는 그간 기성세대가 당연시 여겼던 경쟁 방식과 삶의 조건에 대한 요즘 세대의 진지한 문제 제기가 도사려 있다.

가정의 달에 더 큰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국민도 적지 않다. 독거노인,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소년소녀가장, 학대아동 등 축복과 감사가 넘쳐야 할 계절의 여왕 5월을 더 잔인하게 경험하는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이 넘쳐난다. 가족 간의 갈등과 불화, 역할 기대의 차이가 빚어내는 실망감과 서운한 감정들이 가족이 개인과 사회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는커녕, 고립감을 키우고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촉매제가 되곤 한다. 가정의 달이 남녀노소, 계층을 떠나, 또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자격을 넘어 온전히 풍요롭고 서로를 품어주는 공동체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모든 시민이 마음을 모아야 한다.

19세기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공휴일과 기념일이 생겨나고 유지되는 원리에 주목했다. 필생의 연구가 도출한 결과는 이날들이 사회구성원 간의 믿음과 결속을 강화하는 마술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도 꽤 유용하다. 삼일절과 개천절에는 국기를 게양해 민족주의를 일깨우지 않나? 디지털 혁신과 경쟁 사회의 파고 속에서 이해타산적 태도와 개인주의가 강한 원심력을 만들어내는 요즘, 우리에게 구심력으로써 공휴일과 기념일이 전달하는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각별하다. 가정의 달이 휴일을 제공한다는 기계적 기능을 넘어, 가족과 공동체를 돌아보고 사회구성원들이 저마다의 자격을 떠나 서로를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갈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필 수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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