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군 선별 땐 전문의료기관 등 연계
한 명당 평균 8회 전문심리 상담 받아
자살시도자·유가족 우선 서비스 제공
환자 퇴원 후 지속 치료·재활 체계 구축
병동 관리료 확대·방문진료 수가 지원
‘장기 지속형 주사제’ 본인 부담금 완화
정부가 5일 발표한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은 정신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고, 치료가 끊기지 않게 지원해 정신질환자의 일상회복을 돕는 체계를 만드는 게 골자다. 사회환경 변화로 사회적 고립감이 커지고 경제난도 이어지면 국민 정신건강 문제가 앞으로 심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중증정신질환자 치료와 요양에 집중했던 정신건강 관리 체계를 예방과 조기 발견, 치료, 일상회복으로까지 확대했다는 점에서 정책이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우선 2025년부터 20∼34세 청년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검진주기를 현 10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고 검진 항목도 우울증에서 조현병, 조울증으로 확대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와 진학과 취업 등 치열한 경쟁문화에 익숙한 청년들의 경우 대인관계 단절을 겪고 미디어 의존도가 높아진 탓에 정신건강 위험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우울증 환자 100만744명 중 2030세대가 약 34만6000명(35%)으로 가장 비중이 컸다.

조현병이나 조울증 등 정신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수록 중증·만성으로 악화하는 걸 막을 수 있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는 “조현병과 조울증 환자는 남들이 자신을 해칠 거란 피해망상이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상태가 나빠지면 해코지한다는 느낌이 강해져 남들의 도움을 거부하게 된다”며 “증상이 악화하기 전 조기 검진과 치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험군으로 선별되면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전문의료기관에 연계한다. 노인과 아동·청소년이 소외됐다는 지적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검진 대상자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신질환 중·고위험군에게 심리상담 서비스도 확대 제공한다. 내년에 정신건강 위험군 약 160만명의 5%인 8만명에게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2027년 대상자를 50만명(고위험군 6만명·중위험군 18만명·일반국민 26만명)까지 늘려 누적 100만명에게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신건강 검진을 받고 우울 등 위험도가 높은 사람과 자살시도자, 자살유가족 등에게 우선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험군에 따라 서비스 횟수가 다른데 한 명당 1회 1시간, 평균 8회 전문심리상담을 받게 된다.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상담센터, 의료기관 등에서 상담을 맡는다. 이를 통해 2021년 12.1%인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을 2030년 24.0% 등 10년 내 2배로 늘릴 계획이다. 정부는 공공을 중심으로 정신건강 검진과 치료가 확대되면 회사 등 민간 부문에서도 관련 상담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신질환자가 퇴원 후 지역사회에서 치료와 재활을 계속할 수 있는 체계도 구축한다. 6시간 이상 이용할 경우 수가(의료행위 대가)를 적용했던 낮 병동 관리료를 확대하고 병원 방문진료 수가를 지원한다. 조현병 증상 관리를 위한 ‘장기 지속형 주사제’ 본인 부담금도 완화할 방침이다. 의료급여 환자의 경우 외래 5%만 자부담하는데 이 비용이 부담돼 이용을 꺼리는 사례가 많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전 교수는 “의료 이용은 가격에 의한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정신질환자와 보호자 치료비를 줄여주는 건 지속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급성기 정신질환자를 수용할 병상과 의사 부족 문제도 개선하기로 했다. 병원 측에선 수가가 낮아 관련 병상을 유지할 유인이 부족했다. 정부는 치료 수가를 새로 만들고 정신의료기관 실태조사를 통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유인책을 마련한다. 현재 139개인 정신응급병상을 250개 이상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정부는 자·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와 치료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외래치료지원제도 활성화에도 나선다. 외래치료지원제는 시·군·구 기초단체장이 이들의 외래치료지원을 결정하고 환자가 따르지 않으면 정신의료기관 평가를 거쳐 입원토록 하는 제도다. 법적 근거는 있으나 ‘강제입원’됐던 환자에게만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치료명령을 강제할 수단도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정부는 정신질환자 정보 연계를 강화하고 제도를 활용하는 의료기관에 보상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 치료지원제를 확대하기로 했다. 법관이 결정해 중증 정신질환자를 강제 입원토록 하는 사법입원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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