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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 “韓경제 국제통상질서 급변·저성장 고착화 내우외환 직면” [세상을 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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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2-21 06:00:00 수정 : 2024-02-20 21: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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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보호무역·지정학적 위험 노출
안으론 1%대 초유 저성장 ‘체력 약화’
기존 산업 유지에만 주력… 혁신도 부진

첨단 R&D투자 속도내고 규제개선 필요
저출산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도 문제
노동개혁… 일·육아 병행 환경조성 중요

정치 포퓰리즘이 경제 발목 잡으면 안돼
의대 정원은 의료계 밥그릇 지키기 아닌
의료산업 파이 키우는 대승적 관점 필요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옛 재무부·재경원(현 기획재정부) 등 경제 부처와 청와대 비서관, 주 OECD대표부 대사를 비롯해 한국경제연구원장 등 민간 연구기관장까지 거친 경제원로다운 모습이었다. 정부 부처를 떠난 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국가 경제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다. 장관급으로 국무총리를 보좌하면서 정책 전반을 총괄·조율하는 국무총리실장은 그새 명칭이 국무조정실장으로 바뀌었다.

권 전 실장은 19일 작금의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을 “서서히 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와 같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에서 퇴임하기 직전 출간한 ‘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라는 저서에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는 저서에서 사회 갈등, 포퓰리즘, 노사 대립의 악순환, 무너진 법치주의, 대기업 때리기 등의 병폐 때문에 ‘한강의 기적’이 사라져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과 후진국이 상대적 개념임을 강조한다. 한때 후진국이었다고 영원히 후진국이란 법도 없지만, 선진국이 됐다고 해서 지위가 계속 유지될 수 없다는 게 역사의 철칙이라는 논리다. 권 전 실장은 노동·교육 개혁의 당위성과 규제 철폐 등 각종 현안에 대해 통계와 경험을 근거로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료계 반발에 대해선 “단순한 밥그릇 지키기가 아니라 의료산업의 파이(부)를 키우는 대승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은 19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가 국제통상 질서 급변과 저성장 고착화라는 복합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노동·교육 개혁과 규제철폐로 민간의 생산성과 혁신 역량을 높여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제현 선임기자

-한국 경제 위기라고 한다. 총체적 이유는.

“국제통상 질서의 급변, 성장동력 약화에 따른 ‘저성장 고착화’라는 내우외환의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은 자유무역으로 급성장했지만 보호무역과 지정학적 위험 등 통상 환경 변화로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하면 글로벌 교역과 투자 위축으로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엔 악영향을 미친다.”

-대내적 위기는 어느 수준인가.

“성장동력 약화로 실제 GDP(국내총생산)가 잠재 GDP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상이 2020년부터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1.4%라는 초유의 저성장에 따른 기저효과에도 불구하고 올해 성장률은 2% 초반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경기 회복력이 떨어지는 건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내수 위축도 원인이지만 혁신이 지지부진한 게 요인이다. 게다가 기존 산업을 유지하는 데 주력하다 보니 성장동력도 급격히 저하됐다.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등 우리의 15대 주력수출품목이 20여년간 동일한 것만 봐도 이유는 자명하다.”

-아르헨티나 등 남미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1인당 국민소득도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고, 물가, 실업 등 거시 안정성도 비교적 양호한 수준이다. 세계 10위권의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국가신용등급도 안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처럼 몰락할 가능성은 낮다. 다만 최근 5년간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D2)이 11.4%포인트 증가한 게 우려스럽다. 정부의 과도한 재정지출에 따른 국가부채 급증 추세가 지속되면 비기축 통화국인 한국의 재정건전성과 대외신인도 악화가 불가피하다.”

-12년째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건 문제 아닌가.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12년 연속 하락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유일하다. 저출산·고령화와 자본투자 약화, 생산성 혁신 둔화 등 모든 생산요소가 구조적으로 부진한 데서 기인한다. 1970∼80년 10년간 고도성장을 이룬 건 노동력과 설비투자 확대에 힘입은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급변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에다 이미 유형자본 축적도 상당한 수준에 달한다. 노동이나 자본 등 양적 투입에 의존한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워진 만큼 돌파구는 생산성을 키우는 것뿐이다.”

-주력 산업 경쟁력이 예전 같지 못하다.

“반도체, 미래차 등 6대 첨단산업 세계 수출시장에서 우리의 점유율은 2018년 중국에 이은 2위에서 2022년 5위까지 하락했다. 같은 기간 세계 반도체 수출이 31.8% 증가했지만 우리의 점유율은 13.0%에서 9.4%로 떨어졌다. 첨단산업 연구개발(R&D) 투자의 속도전이 중요하다. 기업 수출 환경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규제·제도 개선도 추진돼야 한다.”

-일각에선 저성장 대신 에너지·자원 고갈을 막는 ‘탈(脫)성장’도 언급된다.

“위험한 좌파적 발상이다. 탈성장은 국민 후생을 증진시킬 수 있는 근본적 대안이 아니다. 경제성장이 사회후생을 대변하지 않지만 성장이 멈추면 국민이 가져갈 파이가 줄어든다. 이는 국민의 경제활동 의욕을 떨어뜨려 삶의 질에도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 소득불평등이나 저출산, 청년실업 등 경제 구조적 문제는 성장률 제고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해결하는 게 순리다.”

-소득재분배를 중시하는 탈성장의 부작용은.

“문재인정부를 돌아보면 명약관화하다. 당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분배 중심 경제정책은 민간의 고용 여력을 급격히 감소시켰다. 그 결과 실업이 늘고 고용의 질이 악화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2012∼16년 대비 문재인정부 임기 5년(2017∼21년) 고용지표를 보면 실업률은 3.4%에서 3.8%로 증가했고, 비정규직은 +52만7000명에서 +148만8000명이다.”

-‘국가소멸론’까지 나올 정도로 저출산이 심각하다.

“저출산·고령화는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노년 부양비 증가로 사회활력을 떨어뜨린다. 잠재성장률 하락의 원인이다. 통계상으로도 생산가능인구가 1% 감소하고 피부양인구 1%가 늘면 GDP가 각각 0.59%포인트·0.17%포인트 감소한다. 근로시간계좌제 등 유연한 근로환경을 조성하고 양질의 보육시설 확충 등 일과 육아를 병행할 환경조성이 중요하다.”

-재정 위기도 심각하다.

“지난해 세수결손의 주원인은 급격한 실적 악화,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법인세와 양도소득세 감소다. 반도체 업종 부진으로 법인세수가 25조원 감소했다. 전체 세수 부족 규모의 43.1%에 이른다.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은 지난해 54.3%에서 2028년에는 57.9%로 상승한다. 비기축통화 11개국 중 증가속도가 1위다. 그렇다고 국채발행으로 대응하면 실물경기 대응력을 위축시키고 세대 간 세부담 이전으로 향후 경제성장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불요불급한 기존 사업을 축소하는 형태로 지출 구조조정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

-예타면제 특별법 등 재정을 위협하는 법안도 있다.

“감세는 단기적으로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투자·고용을 촉진해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세수를 늘리는 선순환을 야기한다. 다만 재정준칙 도입 없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요건을 완화하는 예타면제법은 총선용이 명확하다. 소득 재분배라는 허울을 쓴 포퓰리즘은 시장 경제질서를 왜곡시킨다.”

-윤석열정부의 노동개혁이 겉돌고 있다는 지적이다.

“파견·기간제 근로제 사용기간이 2년으로 제한돼 있지만 주요 5개국(G5)에서는 무제한이다. 파업 등 쟁의행위 발생 시에도 주요 국가 대부분이 대체근로를 허용하지만 우리는 금지돼 있다. 강성노조에 맞서는 기업 대응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해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2050년 생산가능인구가 2022년 대비 34.7% 감소할 것이다. 프레이저 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165개국 중 152위로 사실상 최하위다. 경직적 노동시장이 국가경쟁력 약화의 원인이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건가.

“정치가 포퓰리즘으로 흐르면 효율적 의사 결정을 가로막기 십상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23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는 64개국 중 28위였지만 ‘정치적 불안’은 52위로 하위권이다. 가덕도신공항과 대구·광주 달빛철도, 용인경전철 등이 대표적 포퓰리즘이다. 승차공유, 원격의료, 공유숙박 등 혁신산업에 대한 국회의 규제입법이 신산업 진출의 걸림돌이다. 21대 국회의원이 발의한 규제법안만 지난해 말 기준 1515건, 규제 건수만 무려 2820개다. 정치가 경제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의료계 반발이 거세다.

“외과·신경과 등 필수의료 부문에 의사수가 태부족이다. OECD와 비교해도 적다. 의료를 단순한 복지 차원이 아니라 산업의 개념으로 보면 해법은 명확하다. 태국이나 싱가포르에는 연간 의료관광객이 수백만명씩 몰려든다. 의료도 서비스 산업이다. 의사 수만 느는 게 아니라 의료산업이 발전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공과대 안에 의대가 있다. 우리는 칸막이가 있다. 밥그릇 지키기 차원에서 볼 게 아니라 이공계와 시너지를 통해 의료산업의 파이를 늘려야 한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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