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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의시대정신] 영화 ‘듄’의 사막행성이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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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18 23:26:12 수정 : 2024-04-08 10: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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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를 관통한 자원쟁탈전
미래에도 변치않는 생존키워드
신대륙 대신 우주로 향한 열망
또다른 혼돈·비극의 서막 아니길

인류 역사상 최대 크기의 우주선이 날아올랐다. 지난 14일, 일론 머스크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쏘아올린 ‘스타십’이다. 크기가 중요한 건 탐사를 넘어 인류와 화물을 우주로 수송하겠다는 계획이 담겼기 때문이다. 지구 밖에서 살아가는 인류, 이른바 다행성 종족(Multi-Planetary Species)을 꿈꾸는 일론 머스크의 비전이 첫 문턱을 넘었다는 평이다. 그의 영감의 원천은 어릴 때부터 읽었던 SF 문학이다. 리스트 상단에 프랭크 허버트의 1965년 작 ‘듄’이 있다.

“어떤 작가가 세계를 쌓아올릴 때 어떤 작가는 전 우주를 탄생시킨다.” 소설 ‘듄’에 대한 영국 저널리스트의 찬사다. 요즘 한국에서도 핫하다. 여섯 권으로 이루어진 전집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듀니버스(듄의 세계관), 듄친자(듄에 미친 자)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개봉 중인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신작 ‘듄:파트2’ 때문이다. 감독 특유의 유려한 시각적 연출과 한스 짐머의 웅장한 스코어가 압권인 영화다. 눈과 귀의 현혹을 지나고 나면 작품이 품고 있는 역사적, 정치적, 철학적 함의를 곱씹어보게 된다. 특히 인류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자원 쟁탈’이라는 키워드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영화의 중심 무대는 먼 미래, ‘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사막 행성 ‘아라키스’다. 물결치는 모래언덕들로 이루어진 별은 아름답지만 가혹하다. 혹독한 기후보다 더 불행한 건 이곳이 우주에서 가장 귀한 물질인 ‘스파이스’의 유일한 생산지란 점이다. 별은 이 값비싼 자원을 채취하기 위해 총칼로 밀고 들어온 외부세력이 장악했다. 원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낙원으로 만들어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 외에는 누구도 이곳에 푸른 생명이 싹트길 바라지 않는다. 스파이스는 메마른 사막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부와 권력을 약속하는 자원이 누군가에겐 저주이고 재앙이다.

영화는 “스파이스를 지배하는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류 근현대사의 한 줄 요약이나 다름없다. 15~17세기 유럽 열강들은 검은 황금이라 불리던 동방의 향신료, 후추를 얻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며 항로를 개척했다. 약탈을 일삼았고 전쟁을 치렀다. 가장 귀한 물질을 가졌다는 이유로 인도와 적도의 섬들은 식민 지배에 시달렸다. 그 안에서 인간의 가치는 한 줌의 후추알만도 못했다.

20세기 검은 황금은 석유였다.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석유를 지배하려 한다.” 노엄 촘스키의 말이다. 영화의 오프닝 문장과 겹친다. 흔히 석유의 왕 하면 록펠러를 떠올리지만, 석유 시대를 연 결정적인 인물은 윈스턴 처칠이라고 한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처칠은 영국 함대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후 영국의 중동 정세 개입이 본격화됐다. 사막의 산유국들과 서구 열강의 복잡다단한 갈등의 시작이다. 당시 상황을 그린 영화가 1962년 작 ‘아라비아의 로렌스’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듄’은 여러모로 흡사하다. 사막에 내던져진 이방인이 원주민들을 이끌고 제국에 항거한다는 큰 줄기가 같다. 로렌스는 실존인물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장교다. 아랍에 파견되어 아랍 민족 편에 서서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을 지원했다. ‘듄’의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가 영웅과 반영웅의 면모를 오가듯이, 영화 속 로렌스의 선악도 모호하다. 실존인물에 대한 평도 엇갈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거대한 정치지형 속에 한 개인의 선의 혹은 악의는 큰 의미가 없었다.

로렌스가 아랍 부족들에게 독립의 열망을 불어넣는 동안, 영국과 프랑스는 중동의 국경선을 제멋대로 가르는 협정을 체결했다. 영국의 두 정치인은 하나의 땅을 두고 모순된 약속을 했다. 이집트 주재 외교관 맥마흔은 아랍인에게, 외무장관 밸푸어는 유대인에게 각각 국가 건설의 정당성을 제공했다. 이런 상황들이 두고두고 중동 화약고의 불씨가 되었고, 현재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까지 이르렀다. 지난 9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걸려 있던 밸푸어의 초상화가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자들에 의해 칼로 죽죽 그어졌다는 뉴스를 봤다. 폭력이 폭력을, 복수가 복수를 낳는 역사는 안타깝게도 현재진행형이다. 역사와 종교와 권력과 자본이 복잡하게 뒤엉킨 중동 전쟁사의 밑바닥에는 늘 검은 황금, 석유가 흐르고 있었다.

인류는 이제 자원을 찾아 우주로 향한다. 인도와 일본이 차례로 달 착륙에 성공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미국 인튜이티브 머신스의 달 탐사선 ‘오디세우스’가 민간 최초라는 기록을 세웠다. 중국과 러시아도 연내 발사를 예정하고 있다. 한국도 오는 5월 우주항공청을 열며 2032년 달 착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꿈처럼 아득하던 달나라가 희토류, 헬륨-3 등 귀한 광물자원이 가득한 노다지 땅이라고 한다. 달 자원의 소유권을 둘러싼 물밑싸움도 이미 시작됐다. 영화 속 사막 행성 ‘아라키스’가 겹치지 않을 수 없다.

후끈한 사막의 모래바람이 코끝까지 닿을 듯했던 극장을 나서자 까만 밤하늘이 보였다. 1969년 달 지표면에 찍힌 인류의 첫 발자국을 보며 가슴 뛰었던 세계는 이제 새로운 우주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수세기 전 그들만의 신대륙 발견이, 그들만의 모험과 진취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불평등을 낳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대항해시대’라는 낭만적인 이름 아래 인류가 겪었던 혼돈과 비극이 ‘우주 대항해시대’에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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