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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칼럼] 조영래 정신에 먹칠한 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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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01 23:34:50 수정 : 2024-04-18 16: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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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투기·반인권 변론 등 공분 불러
野 총선 공천 후보들 잇따라 낙마
정치용 스펙 쌓기 위해 가입했나
인권 옹호, 민주 입에 올리지 말라

“이 땅의 가난하고 억눌리고 억울하고 한 맺힌 사람들은 이제 누구를 의지하며 그들을 짓밟는 저 불의와 허위는 누가 깨뜨릴 것입니까.”

인권 변호사 홍성우의 조영래 변호사 추도사이다. 1990년 43세로 요절한 조영래. 그는 한국 인권 변호사의 상징이다.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창립의 주춧돌을 놓고 이름까지 직접 지었다.

김환기 논설실장

변호사 생활은 8년에 불과했지만,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겼다. 국내 집단소송의 효시로 꼽히는 망원동 수해사건, 환경피해 소송의 시초로 평가받는 상봉동 진폐증 사건에서 승소해 사법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여자는 결혼하면 퇴직하도록 하던 여성 조기 정년제 폐지 소송, 부천서 성고문 사건 승소도 마찬가지다. 사회 발전과 국민 인식 전환을 위한 그의 기여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약자와의 동행에서 삶의 의미를 찾은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념 지향성이 외골수가 아닌 점은 조영래를 더욱 빛나게 한다. 균형된 판단력을 갖춰 도그마에 빠지지 않았다.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만 봐도 그렇다. “동구권에 속한 나라들에서 대중들의 창의와 자유를 질식시켜온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우상이 여지없이 타파되어가고 있는 것은 80년대가 이룩한 가장 혁혁한 세계사적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1989년 월간 잡지 기고문)

조영래는 “사회주의권은 이제 끝나 가고 있는데도 우리 젊은이들은 심지어 내 말까지도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는 말까지 했다고 언론인 남시욱은 증언한다. 운동권이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환상을 깨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묻어난다.

조영래 정신의 산물인 민변이 위기에 직면했다. 4·10 총선의 더불어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민변 출신 인사들의 몰염치한 처신이 잇따라 드러나 공분을 불렀다. 다수의 부동산을 ‘갭투기’로 보유한 이영선 변호사는 당 공천 심사 때 재산 보유 현황을 허위로 제시한 사실이 뒤늦게 들통나 공천이 취소됐다. 민생 변호사를 자처한 그의 행태에 비춰 보면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 


민변 사무차장이던 이주희 변호사가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서 17번을 받은 것도 볼썽사납다. 위성정당을 “정당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위헌”이라고 비판한 민변의 지도부가 위성정당에 뛰어든 것은 이율배반이다. 거액의 코인 거래로 민주당을 탈당했다가 더불어민주연합에 입당한 김남국 의원, 조국 전 장관 아들의 허위 인턴 증명서를 만들어 준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한 최강욱 전 의원은 또 어떤가. 사회 지도층의 품격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는 민변 회칙은 장식품으로 만들어 놓은 건가.

조영래가 살아 있다면 절망할 일이다. 도덕성을 중시하고 돈과 권력 추구를 경계한 조영래와 반대의 길을 간 결과다. 정치권 진입용 스펙 만들기 차원에서 민변에 가입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간첩 혐의자 변호를 도맡아 종북 논란이 이는 민변 변호사들이 있다는 점이다. 조영래가 민주 진영의 사회주의 체제 편향에 대한 걱정을 토로한 지 35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민변 출신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조영래 사무실에서 시보로 실무 수습을 한 인연을 자랑스러워하며 조영래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하나 그의 사법리스크만큼 조영래 정신에 먹칠을 하는 것을 찾기 어려운 건 아이러니다.

민변의 정치화가 근본 원인이다. 민변 출신인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 정부에서 민변 출신이 대거 요직에 진출하면서 조직이 인권 옹호보다는 권력을 탐하는 ‘정치 사관학교’로 전락한 느낌이다. 민변은 초심을 잃고 권력을 좇는 이익집단으로 변질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뼈를 깎는 조직 쇄신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더 이상 인권과 민주, 공정과 정의를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것이다.


김환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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