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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힌 돌 쳐내기 공천 극성… 지역대표성 훼손 심각

#1. 사전투표 첫날, 일이 바빴다. 토요일은 줄이 길 텐데, 고민하는 소리를 들은 후배 기자가 말했다. “어디 외출할 일 없으세요? 토요일은 다들 집 근처에서 하니까 관외투표는 별로 안 기다리고 금방 할 수 있어요.” 귀가 솔깃했다. 다음날, 주소지인 서울 중구를 벗어나려 운동 삼아 20분쯤 걸었다. 목적지는 성동구 옥수동에 있는 사전투표소. 도착해서야 아차 했다. 중구는 중·성동을 선거구에 포함돼 있어 이곳에서도 나는 관내투표인이었다.

#2. 중·성동을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신설됐다.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3대1 이하에서 2대1 이하로 바꾸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인구가 적은 중구는 단독 선거구 지위를 잃었다. 인접 옥수동·금호동과 합쳐져 중·성동을이 탄생했다. 성동구 나머지 동네엔 중·성동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구민이 단 한 명도 없는데도 말이다.

유태영 정치부 차장

#3. 이번 22대 총선을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중구를 종로구와 합치라고 권고했다. 그게 ‘하나의 자치구 일부를 분할해 다른 지역구에 속하게 할 수 없다’는 기본 원칙에 부합한다고 판단해서다. 획정위 권고를, 여야는 예외규정으로 피해 갔다. 하나로 합쳐지는 종로·중엔 현역 의원이 여야 1명씩 2명, 성동갑·을 2개 선거구에 남는 현역은 1명. 이들의 이해관계와 정당별 득실을 조율하기가 대략 난감했을 터다. 성동 말고도 강원 춘천, 전남 순천, 경기 양주, 전북 군산이 이런 식으로 쪼개져 ‘특례’ 갑·을 선거구가 돼 있다. 짜깁기를 하느라 전국의 선거구는 1곳 늘었다. 희생당하는 건 언제나 비례대표 의석이다. 2004년 56석이던 비례 의석은 2008년 54석, 2016년 47석으로 줄더니 이제 46석이 됐다.

#4. 김성조 연세대 교수(동아시아국제학부)는 “소선거구제는 지역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공천을 할 때도 지역 단위에 자율성을 더 주고 후보도 지역 활동 중심으로 뽑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리의 소선거구제는 과연 그러한가. 양당 공천을 보면서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영입 인재’란 타이틀을 단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일은 총선 역사에 부지기수다. 여당은 선거가 임박해 중진 여럿을 다른 지역구로 돌렸다. 야당에서는 이른바 ‘비명’ 현역을 쳐내기 위한 ‘친명 자객’들이 이곳저곳에서 지역구를 옮겨 왔다. 개중에는 다른 지역 도당위원장 타이틀을 단 사람도 있었다.

#5. 지역구 후보로 나섰지만 정작 본인한테는 표를 줄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생겼다. 선거인명부 작성 기준일이 지난 시점에 벼락 공천을 받은 까닭에 뒤늦게 주소지를 옮겨 봐야 소용이 없었다. 기자 시절 “하루아침에 날아온 후보는 자신의 지역구 골목 번지수나 알고 있을까”, “지역주민을 ‘장기판의 졸(卒)’로 여기는 게 아니라면 이럴 순 없다”고 꼬집었던 해당 후보의 칼럼은 이제 자신과 소속 정당을 겨눈다.

#6. 2위 이하는 모두 낙선하는 소선거구제에선 필연적으로 사표가 많이 발생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전국 정당 득표율에 비해 모자란 지역구 의석수를 비례 의석으로 채워 주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하지만 거대 양당은 두 번 연속 꼼수 위성정당을 출범해 제도를 무력화했다. 기이해진 제도하에서 우리는 또다시 국민의 대표자 300명을 뽑았다.


유태영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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