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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의 당이 시가를 금지하다니…"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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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17 14:17:39 수정 : 2024-04-17 14: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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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피우다 만 시가(담배의 일종) 꽁초가 경매에서 4500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840만원)에 낙찰됐다. 해당 꽁초는 길이가 약 9.5㎝로 처칠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8월22일 긴급 각료회의에 참석하느라 피우다 만 시가 꽁초로 추정된다. 나치 독일이 소련(현 러시아)을 침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처칠은 독일군이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코앞까지 진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각의를 소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매 회사 관계자는 “(애연가로 유명한) 처칠이 시가 한 대를 다 피우지 못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윈스턴 처칠(1874∼1965) 전 영국 총리. 1941년 촬영된 이 사진은 처칠이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빼앗자 화가 난 처칠이 심각한 표정을 짓는 순간 카메라 셔터를 누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처칠은 평생 독한 시가를 입에 물고 다녔다. 우리가 처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 유명한 사진도 시가와 관련돼 있다. 2차대전 와중인 1941년 영국 자치령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를 방문했을 때 촬영된 것이다. 아르메니아계 캐나다인 사진작가 유섭 카쉬는 처칠에게 조심스럽게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사전에 이를 몰랐던 처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가 시가에 불을 붙이고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는지 “한 장 찍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러자 카쉬는 처칠이 입에 문 시가를 빼앗았다. 처칠이 화가 치민 듯 심각한 표정을 짓는 순간 ‘찰칵’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 사진은 남은 2차대전 기간 동안은 물론 그 뒤에도 나치 독일 등 추축국을 겨냥한 처칠의 준엄한 경고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처칠은 담배는 물론 술도 무척 즐겼다. 이는 평생 그를 괴롭힌 우울증에 대처하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했다. 2차대전 발발 후에는 전쟁 지휘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인지 술과 담배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늘었다. 전쟁 초반 영국군이 독일군에 연전연패한 데 따른 씁쓸함, 쇠약해진 영국을 대신해 미국과 소련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느낀 허탈감 등도 한몫 했다. 나치 독일이 항복한 직후인 1945년 7월 하원 총선에서 그가 속한 보수당이 참패하고 노동당이 새 집권당이 되면서 우울증은 더욱 악화했다. 그렇게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는데도 90년을 살았다. 오늘날 담배를 끊으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이들은 “처칠은 애연가였지만 90세까지 장수했다”고 핑계를 댄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런던시장 시절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전기를 집필했을 만큼 처칠을 존경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6일 영국 하원에서 ‘담배 및 전자담배 법안’에 대한 2차 독회가 열려 해당 법안이 찬성 383표, 반대 67표를 각각 받았다. 이로써 ‘2009년 1월1일 출생자(현 15세)부터는 평생 영국에서 합법적으로 담배를 구입할 수 없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법률안 통과까지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현재 영국 하원은 처칠의 후예인 보수당이 집권 여당이자 원내 1당이나 정작 보수당 의원 상당수는 기권 및 반대표를 던졌다. 처칠 전기의 저자인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는 “(시가 애호가였던) 처칠의 당이 시가를 금지하다니 미친 일”이라고 정부·여당을 비판했다. 처칠이 살아 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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