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면엔 아파트 위층 동·호수 적어
‘마약 위조지폐 상품권 팜. 여중생 여고생 성매매.’
지난 15일 조모(43)씨가 뿌린 5만원권 지폐와 상품권 복사본 300여 장에 적힌 문구다. 조씨는 층간소음 피해를 봤다는 이유로 이 같은 일을 벌였다. 그가 살포한 복사본은 지폐 288장, 상품권 32장 등 총 320장으로 뒷면에는 피해자들의 거주 동·호수를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28일에는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겪던 50대가 10대 이웃에게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10대 B군은 50대 A씨 바로 윗집에 거주하는 주민으로 A씨와 B군이 층간소음을 두고 언쟁을 벌이다 범행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과거에도 층간소음 문제로 자주 실랑이를 벌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웃 간 층간소음이 다년간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층간소음 관련 민원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38.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강력범죄는 2016년에서 2021년 사이 10배가 늘었다.
18일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이 운영하는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 관련 민원은 3만6435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확산하기 이전인 2019년(2만6257건)과 비교해 38.8%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 시기 펜데믹 이후 연도별 층간소음 접수 건을 살펴보면 2021년이 4만6596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 2020년(4만2250건), 2022년(4만0393건) 순으로 많았다. 반면 2019년은 2만6257건이었고 그 이전에 3만 건 이상을 넘은 해는 없었다.
층간소음과 관련된 강력범죄도 급증하는 가운데 100대 국내 시공사 대부분에서 층간소음 민원이 발생하고 있어 정부의 소음 관련 건축 기준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한 칼럼에 따르면 지난 3년(2020~2023년)간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 2만7773건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시공 능력 상위 100개 건설사 중 87개 사가 만든 공동주택(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민원이 발생했다.
국내 대표적인 모든 건설사에서 층간소음 민원이 발생했고 전체 2만7773건 중 건설사 명 분류가 정확히 가능한 건수는 9558건(전체 34%)였다. 분류 과정에서 건설사 명을 LH(783건), 대한주택공사(125건), SH(94건) 등으로 입주민들이 시행사와 시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입력한 자료들도 다수 있어 이들은 모두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강력 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경실련이 KBS 시사직격팀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2016~2021년)간 층간소음 관련 형사사건 판결문 분석에 따르면 층간소음이 만든 살인·폭력 등 5대 강력범죄는 2016년 11건에서 2021년 110건으로 10배 증가했다.
이에 경실련은 “층간소음으로 인한 범죄가 늘고 피해가 증가하는데 정부와 국회는 무관심하다”며 “경실련이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질의를 해도 형식적이고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경실련은 “우리나라는 국민 10명 중 7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동주택에 거주하므로 국민 대다수가 층간소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서 “층간소음 분쟁이 강력 범죄로 발전하는 것을 막고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관리 감독 기능을 강화해야 하는데 현재 정부의 층간소음 정책은 매우 미흡한 수준이다”고 지적했다.
여러 가구가 밀집해 있는 아파트에서 특히 층간소음 민원이 빈번했다. 최근 3년간 접수된 관련 민원 중 84%인 2만3439건이 아파트에서 발생했다. 피해 유형은 ‘윗집의 소음’이 2만3481건(85%)으로 대다수였으며, 주 소음원은 ‘뛰거나 걷는 소리’가 1만8785건(68%)으로 가장 많았다.
경실련은 “층간소음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국토교통부와 환경부의 층간소음 관리 감독 역할을 강화하고 두 부처 간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국회에서 상위법을 근거법으로 제정하는 일이 시급하다”며 “살인, 방화, 폭력 등 끔찍한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키고 잠재적 피해자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층간소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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