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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미사일 기술 고도화… 그 발판엔 ‘러 참고자료’ 있었다 [이슈 속으로]

입력 : 2024-04-27 10:49:45 수정 : 2024-04-27 13: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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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영향받은 北 무기들

北, 1980년대말 러 인력 대거 반입
이후에도 기술·장비 등 몰래 들여와
무수단 IRBM∼ICBM 신무기까지
러 무기 모방해 획기적인 기술 향상

국제사회서 고립·경제난 겪는 북한
개발비용 절감·소요시간 단축 효과
적은 투자로 美와 핵격차 완화 이점
한·미연합 대응 전략적 억제력 강화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에서 CCTV를 파손한 것과 비슷하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이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이달 말에 활동을 마치게 된 것에 대해 황준국 주유엔대사가 남긴 말이다.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만들어진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을 무력화한 러시아는 북한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 기술적 출처로 지목되는 국가 중 하나다. 북한 미사일 기술 중에서 러시아와 유사한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자국의 기술통제를 엄격하게 집행했다면, 북핵 위협이 고도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뉴시스

◆北, 러시아 기술로 미사일 개발 가속화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서 러시아 기술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옛 소련이 무너지던 1980년대 말부터 1992년까지 북한은 러시아에서 탄도미사일 개발 인력과 기술자료 등을 대거 반출했다. 이후에도 러시아를 통해 기술과 소재, 장비 등을 몰래 들여왔다. 북한 미사일은 단기간 내 획기적인 기술 향상을 이뤘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 기술이 적용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이다. 무수단이라는 명칭은 미국 첩보위성이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처음 식별해서 붙여진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개발에 착수해 2007년 실전배치됐다. 옛 소련이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에 걸쳐 개발한 R-27(SS-N-6)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모방해 만들어졌다. 사거리는 3000~4000㎞로 태평양 괌을 사정권에 넣었다. 지금은 무수단보다 우수한 화성-12형 액체연료 IRBM과 신형 중장거리 극초음속 고체연료 탄도미사일(북한 주장) 등이 개발됐지만, 처음 등장했을 당시 무수단은 한반도로 출동하는 미군 증원전력을 저지할 위협적인 전략무기로 꼽혔다.

 

북한이 2017년 3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실시한 엔진 연소 시험을 통해 공개된 백두산 로켓 액체연료 엔진은 북한의 미사일 기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를 제공했다. 북한은 백두산 엔진을 쓰는 화성-12형과 화성-14·15·17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넣었다. 대출력 로켓엔진은 개발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경제력이 빈약한 북한이 단기간에 신뢰성 높은 로켓 엔진을 독자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낮은 이유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우크라이나 국영 우주로켓업체 유즈마시가 옛 소련 시절인 1965년 개발한 RD-250 액체연료 엔진을 모방했다고 평가한다. RD-250은 러시아에서도 널리 사용했던 만큼 러시아에서 엔진 또는 관련 기술이 북한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북한이 2015년 2월 처음 공개했던 신형 대함미사일은 러시아산 kh-35를 모방했다는 평가가 많다. 러시아가 옛소련 시절인 1983년 개발한 kh-35는 사거리가 130㎞에 달한다. 미국산 하푼 대함미사일보다 복잡한 경로를 이용한 비행이 가능하며, 전파 방해에도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kh-35를 모방한 뒤 성능개량 등을 거쳐 바다수리-6형 지대함미사일을 지난 2월 시험발사했다.

북한이 개발한 화살-1·2형 순항미사일의 기술적 출처도 러시아가 꼽힌다. 군 당국은 북한이 2000년대 초부터 순항미사일 개발을 추진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무기가 kh-55 순항미사일이다. 옛 소련이 1970년대 개발한 kh-55는 냉전 종식 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나눠 가졌다. 우크라이나는 kh-55를 러시아에 반납하거나 폐기했는데, 이를 피한 kh-55 중 일부가 중국·이란에 밀반출됐다. 이때 이란에 넘어간 미사일을 북한이 입수했다는 의혹이 일본 등에서 제기된 바 있다.

 

북한이 2021년 9월에 공개했던 열차 발사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은 옛 소련의 핵열차를 본떴다는 평가다. 옛 소련은 1980년대 초에 3발의 핵탑재 ICBM을 실은 12대의 전투열차미사일체계를 실전 배치한 바 있다. 이 열차는 하루에 수백㎞를 이동할 수 있다. 외형적인 측면에서 일반 열차와 구분이 쉽지 않고, 수시로 위치를 바꿔 터널 등에 장기간 은신하면 정찰자산으로 포착하기가 어렵다는 평가다.

북한이 2021년 초에 공개했던 앰풀화 기술도 러시아가 출처로 지목된다. 러시아 미사일 업체인 NPO 마시는 과거에 앰풀화 기술을 적용한 ICBM을 개발한 바 있다. 액체연료 미사일은 발사 직전 연료를 주입하므로 신속한 발사가 어렵고, 연료 주입을 하는 동안에는 공격에 취약하다. 제조 단계에서 엔진에 연료를 주입해 밀봉하는 기술인 앰풀화를 이용하면 연료를 수년간 미사일 동체에 넣어도 부식되지 않고, 신속한 발사가 가능하다. 북한이 앰풀화 기술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면 구형인 스커드 액체연료 탄도미사일조차도 한·미 연합군의 공격을 받을 위험을 낮추면서 신속하게 발사를 감행할 능력을 얻게 된다. 항공우주 공학 전문가인 마커스 실러 박사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1960년대 옛 소련의 기술을 다수 갖추고 있다”며 “연료 앰풀화를 하면 액체연료를 발사 직전에 주입하지 않아도 된다. 일부 러시아 ICBM은 여전히 그 기술을 쓰고 있고 발사까지 반응 시간이 2분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유사한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S-300/400 지대공미사일과 비슷한 외형을 지닌 신형 지대공미사일 체계도 러시아와의 연관성이 제기되는 무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뉴시스

◆한·미에 맞서는 새로운 카드 얻는 효과

북한이 러시아의 기술을 이용하거나 모방하는 방식으로 신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상당한 이익을 안겨주는 효과가 있다는 평가다.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강력한 제재를 받는 고립된 국가다. 국내적으로도 거대한 산업 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수십개의 탄도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개발 속도도 매우 빠르다. 고체연료 ICBM의 경우 러시아는 개발에 20년이 걸렸고, 중국은 30년, 인도는 20년 이상이 소요됐다. 하지만 북한은 이보다 훨씬 짧은 시간만으로도 개발에 성공했다. KN-23, KN-24, KN-25 등 차세대 고체연료 단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에서도 큰 성과를 냈다. 여기에 더해 매년 새로운 미사일을 선보이면서 한·미를 압박하고 있다. 현재 개발한 미사일만으로도 서울에서 워싱턴에 이르는 북태평양 전역을 타격할 수 있을 정도다. 이 같은 성과는 북한의 독자적인 역량으로는 불가능하다. 러시아라는 ‘참고자료’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무-3 순항미사일. 연합뉴스

이는 북한이 한·미에 맞설 수 있는 전략적 억제력을 강화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한국은 재래식 군사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현무 탄도미사일 등이 포함된 킬 체인과 더불어 한국형미사일방어(KAMD)체계, 특수전 전력을 포함한 대량응징보복(KMPR) 능력으로 구성된 한국형 3축 체계와 더불어 육·해·공군 재래식 전력 증강도 지속되는 모양새다. 미국도 확장억제력을 한반도에 투입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재래식 전력과 핵 억제력을 모두 강화해야 한국과 미국의 군비증강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력 측면에서 한·미에 크게 뒤지는 북한으로서는 재래식 전력과 핵 억제력을 단기간 내 대폭 증강하기가 어렵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군비 증강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면 경제 사정이 더욱 악화할 우려도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러시아의 기술을 모방해서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시행착오를 줄여 개발 소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미국과의 엄청난 핵 격차에 직면한 북한이 이 같은 차이를 빠르게 좁히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빈약한 경제력을 지닌 북한은 재정적 여력이 크지 않다. 군사과학기술 분야에서 선진국인 러시아의 기술을 모방하거나 이용하면 적은 투자로도 한·미의 압박에 맞설 전략적 억제력을 빠르게 구축, 미국과의 핵 격차를 조금이나마 좁힐 계기를 얻을 수 있다. 북한으로선 무시하기 어려운 이점이다.

다만 북한의 이 같은 노력이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얼마나 흔들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재래식 전력에서 북한을 앞서는 한·미 동맹은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확장억제의 토대를 다질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한·미는) 핵과 재래식 전력에서 북한보다 우위를 갖고 있으므로 실효적인 확장억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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