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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물생심과 착각, 그리고 괜한 오지랖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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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27 11:44:00 수정 : 2024-04-27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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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부인, 그리고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사는 평범한 남성이다. 그는 2016년 10월 평소 아이가 자주 가는 놀이터에서 누군가 놓고 간 휴대전화 1개와 신용카드 1매를 우연히 발견해 주웠다. 분실자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7개월간 수사한 끝에 A씨를 점유이탈물횡령 혐의로 입건했다. 검찰에 송치된 A씨는 결백을 주장했다. 통닭집 주방 보조였던 그는 “매일 새벽 2∼4시까지 일한다”며 “물건 임자와 만나 직접 돌려주려 했으나, 형편상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검찰은 습득한 휴대전화 등을 주인에게 반환하려는 의사가 A씨에게 없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형사처벌은 너무 가혹하다고 여겼는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서울지하철 유실물 센터 전경. 지하철 등에서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을 주웠다면 무조건 관계 당국에 신고부터 하는 것이 현명하다. SNS 캡처

아파트 17층에 사는 B씨는 2018년 10월 “택배 올 것이 있다”는 아내 말을 듣고 보관소로 갔다. ‘170○호’라고 적힌 택배 상자를 집어든 그는 바로 옆에 있던 상자도 자기네 집으로 온 것인 줄 알고 챙겼다. 해당 택배 상자에는 ‘70○호’라고 적혀 있었다. “택배 상자가 없어졌다”는 70○호 주민 신고를 받고 보관소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검증한 경찰은 B씨를 절도 용의자로 입건했다. B씨는 “번호가 비슷해 헷갈렸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B씨에게 남의 물건을 가로채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었던 것으로 결론 내렸다. 그러나 형사처벌까지 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봐 기소유예로 사건을 종결했다.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이 ‘단골손님’처럼 자주 나오는 죄명이 있다. 형법상 점유이탈물횡령죄와 절도죄다. 전자는 누군가 잃어버리거나 놓고 간 물건을 가져가는 행위, 후자는 남의 재물을 훔치는 행위에 각각 적용된다. 입건 사례가 워낙 많다 보니 검찰도 기소에 신중을 기한다. 죄질이 정말 나쁜 경우가 아니라면 기소를 유예하는 식이다. 하지만 무혐의 말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람 입장에선 ‘사실상 유죄’라는 결론이 불만스러울 법도 하다. 앞서 소개한 A씨와 B씨는 둘 다 헌법재판소에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해 승소했다. 기소유예가 아니고 무혐의라는 점을 공인받은 셈이다.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청사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은 점유이탈물횡령 혐의로 기소된 C(26)씨 1심에서 최근 유죄를 인정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C씨는 지하철에서 누군가 잃어버린 시가 62만원 상당의 명품 지갑을 주운 뒤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조사에서 그는 “반환을 위해 지갑을 우체통에 넣었다”며 무죄를 하소연했으나, 검찰은 지갑 습득 후 우체통 투입까지 100일가량 걸린 점을 근거로 기소를 강행했다. 죄질이 나쁘다고 본 것이다. 1심 재판부도 검찰의 손을 들어준 가운데 C씨는 억울했는지 항소하는 길을 택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들은 “하여튼 남의 물건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분실물 습득 후 괜히 “주인을 찾아 돌려주겠다”며 본인이 갖고 있다간 점유이탈물횡령이나 절도 혐의로 입건될 수 있으니 무조건 경찰 등에 신고하는 것이 상책이란 뜻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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