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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美 전역서 총기 난사 126건
교사, 총기 은닉 보유 대응 불구
사건 발생 차단 역부족 공감 속
美 정치권, 규제 놓고 대립 여전

“학교에 총을 쏘고 싶다. 몇 달 동안 준비했다. 총은 AR-15(반자동소총)이다. 어린아이들은 더 쉬운 표적이기 때문에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총을 쏠 생각도 한다. 고등학교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인 만큼 가장 좋은 타깃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한 번의 총기 난사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살 기록을 세우는 것이다.”

지난 17일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18세 학생이 경찰에 체포됐다. 아시아계 미국인 알렉스 예는 자신이 재학 중인 고등학교, 졸업한 초등학교에 총을 난사하는 계획이 담긴 129쪽 분량의 선언문을 작성했다. 선언문은 소설 형태를 띠었는데, 경찰과 연방수사국(FBI)은 그 내용이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사실상 총기 난사를 계획한 것으로 판단했다. 알렉스는 성 정체성 문제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꾸준히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고, 2022년에도 학교에 총을 쏘겠다고 위협해 5개월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지역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교육청은 학부모에게 따돌림 문제 등에 각별히 대응하겠다는 내용의 공지문을 발송했다. 해당 고등학교 옆 중학교에 자녀를 둔 지인은 “교실 한쪽에서 아무도 모르게 총기 난사를 계획하는 학생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실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것만큼이나 두렵다”고 했다. 이번 사건이 모방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알렉스가 경찰에 체포되고 닷새 뒤 해당 고등학교를 포함한 인근 학교 6곳에 폭탄 위협이 있었고,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알렉스 역시 다른 총기 난사 사건에 영향을 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알렉스는 지난해 3월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사립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총기 난사 사건을 검색했다. 테네시주 총격범은 성전환 여성으로 초등학교에 침입, 총기를 난사해 6명을 살해하고 현장에서 사살됐다. 총격범은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성명서를 준비했다. 알렉스 역시 계획과 성명서를 작성했고, 경찰에 의한 자살(suicide by cop)에 대해 수차례 검색했다고 한다.

테네시주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뒤 1년 만인 지난 23일 테네시주는 총기 난사 사건을 막기 위해 교사들이 교내에서 권총을 은닉 소지(carry concealed handguns)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주 의회 공화당 의원들이 입법을 주도했다. 교사들은 신원 조회와 40시간의 교육을 거쳐 권총 소지 허가를 받을 수 있고, 어떤 교사가 권총을 소지하고 있는지는 학부모나 다른 교사에게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교실에서 권총을 찬 교사가 수업을 하고, 학생이나 동료 교사는 어떤 교사가 권총을 소지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법안 통과를 두고 테네시주는 요동치고 있다. 교사가 소지하는 총은 총격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 교사가 총기를 소지하는 것 자체가 학생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뉴욕타임스는 ‘테네시처럼 보수적인 주에서도 법안에 대한 반응은 불안과 실망으로 엇갈렸다. 총기 권리를 주장한 일부 사람들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총기 규제 이슈는 불법 이민, 낙태, 경제 문제 등에 가려졌다.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총기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월 총기 로비 단체 전미총기협회(NRA) 연설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시행한 총기 규제를 철회하겠다며 “누구도 당신의 총에 손가락질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미 총기폭력아카이브(GVA)에 따르면 올해 미 전역에서 126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하루에 한 건꼴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총격범을 제외한 4명 이상이 총에 맞았다는 의미다. 따돌림당하는 학생의 가방에 숨겨진 총이 난사되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교사의 허리춤에 숨겨진 총이 총기 난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다수의 미국인이 동의하는 사실이다. 미 정치권이 총기 규제에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여전한 이유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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