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멸망한 세상, 아름다운 광기 속으로 분노의 질주

입력 : 2024-05-21 20:15:16 수정 : 2024-05-22 10:59:3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조지 밀러 감독의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의 후속편
괴한 일당에게 납치된 퓨리오사
집으로 귀환위한 고난·여정 그려

흙먼지·모래바람·엔진의 굉음…
15분간 내달리는 탈주액션 ‘아찔’
서부영화같은 ‘복수엔딩’ 인상적

한참이나 스크린에 눈을 고정하게 만드는 영화 장면들이 있다. 이런 작품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겨를을 주지 않고, 긴 시퀀스가 끝난 뒤에야 밀린 숨을 몰아쉬게 한다. 내년이면 팔순인 조지 밀러 감독의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그렇다. 밀러 감독은 전작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처럼 이번에도 8기통 엔진을 달고 관객을 멸망한 세상의 아름다운 광기 속으로 데려간다.

‘퓨리오사’는 ‘매드맥스’의 프리퀄(시간상 앞선 이야기를 다룬 속편)이다. ‘매드맥스’에서 퓨리오사는 폭군 임모탄이 지배하는 시타델의 간부이지만, 모든 걸 버리고 고향으로 향했다. 자잘한 사연 설명 없이, 모래바람 속을 묵묵히 일직선으로 질주했다. 이번에는 퓨리오사가 탈주에 이르기까지 15년 이상의 시간을 다룬다. 이야기의 엔진을 데우는 동력은 생존과 복수다.

‘퓨리오사’는 문명 붕괴 후 살아남은 인간들이 끝 모를 황무지에 쓴 광란의 시에 가깝다. 밀러 감독은 영화 시작 후 느긋하게 시동을 걸 시간을 주지 않는다. 퓨리오사의 고향인 녹색의 땅이 나오는 것도 잠시, 이내 끝없는 사막이 펼쳐진다. 심장 박동 같은 음악이 낮게 깔리고, 어린 퓨리오사를 납치한 일당과 딸을 찾으려는 어머니가 바이크를 탄 채 광막한 황야를 말없이 달린다.

어머니는 결연하고 용감했지만 끝내 무법자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에게 목숨을 잃는다. 그는 죽기 전 딸에게 식물의 씨앗 하나를 건넨다. ‘얼마가 걸리든 꼭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과 함께. 디멘투스의 소유가 됐다 다시 임모탄에게 넘겨진 퓨리오사는 이 씨앗에 의지해 절망을 견딘다.

‘매드맥스’에서 자동차 추격전의 새 지평을 연 감독답게, 이번에도 액션 장면이 압도적이다. 영화의 백미는 10대가 된 퓨리오사(안야 테일러 조이)가 1차로 시타델에서 탈주하는 대목이다. 전투트럭의 직선운동에 축제 같은 절망과 광기를 담았다.

식량을 실은 채 앞만 보고 달리는 육중한 트럭, 이를 탈취하려는 무법 세력 ‘굴욕자들’, “기억해줘”라며 죽음을 향해 몸 던지는 하얀 워보이들, 난리 통 속에 몰래 숨어든 퓨리오사, 이 속에서 고요하게 트럭을 모는 근위대장 잭(톰 버크)까지 오중주 액션이 몰아친다.

약 15분간 내달리는 이 ‘탈주 액션’은 78일 동안 촬영됐다. 투입된 스턴트는 200여명에 달한다. ‘매드맥스’ 시리즈는 액션에서 컴퓨터 그래픽(CG)에 대한 의존을 최소화하고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퓨리오사와 디멘투스 일당의 맞대결에서 몬스터 트럭이 경사면을 밀어버릴 기세로 돌파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퓨리오사를 연기한 안야 테일러 조이는 고독마저 사치인 절박한 인간을 표현해낸다. 전편의 샬리즈 세런과 비교하면 여전사로서 듬직함은 덜하지만 연약함 속에 ‘깡’이 엿보인다. 크리스 헴스워스는 디멘투스를 사악하면서도 비뚤어진 유머 감각을 가진 악당으로 그려 마냥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다만 퓨리오사와 대척점에 선 인물로서 극을 끌고 가기에는 흡인력이 조금 아쉽다.

이 영화는 흙먼지와 모래바람, 엔진의 굉음과 함께 한참 미친 듯이 질주한 끝에 시동을 끄고 고요히 복수의 의미를 묻는다. 막막한 청색 하늘을 등지고 진행되는 마지막 복수 장면은 서부영화의 한 장면처럼 고전적이다.

다만 메시지의 힘은 전작보다 약하게 느껴진다. ‘매드맥스’는 위대한 단순함 속에 기계와 자연, 여성성과 남성성을 대비시키며 직관적으로 주제의식이 전달되도록 했다. 반면 ‘퓨리오사’는 대사량이 많아지면서 서사가 늘어났음에도, 복수 후의 개운함이나 씁쓸한 뒷맛, 허망함 같은 뚜렷한 감정을 전하진 못한다. 인간의 존엄성이 의미 없어진 적자생존의 지옥에선 복수할 대상조차 모호해서인지도 모른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수지 '우아한 매력'
  • 수지 '우아한 매력'
  • 송혜교 '반가운 손인사'
  • 김희애 '동안 미모'
  • 하이키 휘서 '미소 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