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논란 국립국악원장은 재공모
예술감독 선발 공개 오디션 등 검토중
문화·체육계 예산 직접지원 방식 변경
문화예술계 수도권 과밀화 해법으로
국립예술단체 지방 이전 청사진 제시
향후 무대 복귀보다 작품 제작 돕고파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용산 대통령실 출신 문체부 고위 인사 내정설로 ‘낙하산 인사’ 논란을 빚은 국립국악원장을 재공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 장관은 또 앞으로 예술의전당 사장 등 문체부 장관이 임명하는 예술기관 기관장을 비롯해 국립예술단체 예술감독은 선임 과정에서 자질 시비가 생기지 않도록 공개 오디션 등 투명한 절차를 거쳐 뽑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다만 ‘알박기 인사’ 논란 차단을 위해 이들 자리에 대한 인선은 6·3 대선 후 새 정부 몫으로 넘길 방침이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세계일보와 만난 유 장관은 10개월 넘게 공석인 국립국악원장의 선임 문제를 둘러싼 정부와 국악계 갈등 상황에 대해 묻자 “국악원장은 재공모할 것이다. 개방형 직위로 바뀌었기 때문에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며 “(다만) 다음 정부에서 하는 것이 깔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국악원장 공모 논란은 그동안 국악 전문가들이 맡아 왔던 자리가 지난해 말 대통령령 개정으로 공무원도 지원 가능한 개방형 직제가 되면서 비롯됐다. 이후 공모 과정에서 용산 대통령실 비서관을 지낸 문체부 고위 공무원 내정 의혹이 불거져 국악계 반발이 거셌다. 이에 다수가 공감할 방안을 찾겠다고 했던 유 장관이 ‘국악원장 재공모 및 새 정부에서 임명’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유 장관은 국립발레단과 국립극단 등 국립예술단체 예술감독들이 취임 후 바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미리 뽑아 두는 ‘사전 지명제’에 대해서도 “지원자들에 대해 공개적인 자질 평가 등 투명한 선발 절차를 마련하고, 실제 뽑는 건 다음 정부에서 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을 자초한 12·3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당시 내가 현장에 있었다면) ‘진짜 그러면 안 된다’고 세게 반대했을 것”이라며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쩌겠나. 대통령이 임명한 내각의 일원으로서 공동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전환기를 맞은 문화정책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후대를 위한 씨앗이라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물러날 때까지) 새 정부가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명박정부 때(2008년 2월∼2011년 1월)에 이어 윤석열정부(2023년 10월∼)까지 문체부 수장만 두 번째인 그는 실제 국립예술단체 통합 및 지방 이전과 예술감독 사전지명제 등 ‘변혁’ 수준의 청사진을 내놓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가주도 문화정책의 한계를 직시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화정책인 ‘문화한국 2035’를 지난달 발표했는데.
“앞으로 10년 동안 문화예술 정책 방향과 먹거리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예술가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지원 정책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봤다. 기존처럼 보조금 나눠주기와 평가 반복에서 벗어나 예술가들이 계속 활동할 수 있는 마당을 열어주는 게 중요하다. 특히 공연 분야는 공동으로 모여서 할 수 있는 예술단을 많이 만들고, 지역 대표 예술단체를 지원해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게 했다. 대한민국 문화정책이 인구구조 변화와 기술 진보, 지역격차 확대 같은 구조적 변화를 맞은 상황에서 과거 공급자 중심·중앙 주도의 문화예술 분야 지원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민 일상 속에서 문화를 확산하고 지역에서도 창작과 향유가 가능하게 하려면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했다. 그래서 ‘창의·혁신’, ‘다양성·포용’, ‘개방·융합’을 3대 가치로 설정해 방향을 새로 짰다.”

―국립예술기관 지방이전이 필요한 이유는.
“수도권, 특히 서울 집중 현상은 문화 분야에서도 너무 심각하다. 국립단체가 서울에만 몰려 있으니 지역 예술가들은 성장 기회를 잃는다. 지역도 창작과 향유가 가능한 문화환경을 만들어야 국가 문화생태계가 건강해진다. 서울예술단을 광주로 이전하기로 한 건 그 첫걸음이다. 이후에도 인프라와 여건을 고려해 국립오페라단과 국립무용단 등 다른 국립단체들도 지방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지역에도 국립 문화시설이 상주하고, 예술가들이 이동하는 흐름이 생겨야 한다.”
―정책 취지는 좋지만 해당 기관과 구성원의 반발이 거세다.
“국가 균형발전 전략 차원에서 밀어붙일 때는 밀어붙여야 한다고 본다. 정부 부처가 세종시에 내려갈 때도 공무원들이 싫어했지만, 결국 국가 전략에 따라 간 거다. 지역 현장(예술계)에서는 사람이 없어서 예술단 창단도 어렵다고 호소한다. 광역시에 먼저 국립단체를 내려보내고, 지역 특화 예술단체를 키워가야 한다. 서울예술단의 지방 이전은 광주 지역 여론 수렴과 이전을 위한 예산 요구, 단원들의 민원 해소를 위한 노력 등을 병행해 문제없이 진행하도록 할 것이다. 국립오페라단 등 다른 국립예술단체도 단계적 이전을 위한 준비를 계속해 나가겠다. 국립예술단체 통합 사무처는 최고의 예술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이를 뒷받침할 행정역량을 갖추기 위해 추진했던 것으로 대내외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 서울시도 협력해야 한다. 25개 자치구마다 예술단을 갖추게 되면 예술가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기반이 생기고 지역문화도 다양해질 수 있다.”
―그런 측면이라면 예술의전당 역량 강화도 필요할 듯하다.
“예술의전당은 지금 대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임대업자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대관 수익에 의존하다 보니 자체 창작 역량이 없다. 국립극장처럼 예술의전당도 전속단체를 갖춰야 한다. 오페라단, 발레단, 합창단, 오케스트라 정도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본다. 자체 제작이 가능해야 진정한 의미의 문화예술 플랫폼이 된다. 그걸 하지 않으면 예술의전당은 단순한 행사장에 불과하다. 그리 되면(예술의전당이 제대로 된 창작극장이 된다면) 예술인들이 전속단체에 들어갈 수 있는 길도 더 열린다. 국립예술단체의 경우 지금은 자리가 잘 안나 1년에 한 명 들어가기도 힘들다. 그래서 청년 예술단을 별도로 신설했다. 올해 4개(연희단, 오케스트라, 극단, 무용단)를 만들고, 내년에는 10개쯤 더 만들 계획이었다. 매번 오디션으로 선발하고 무대에 오를 기회를 늘려주면서 출연료 수입도 많아지게 하자는 것이다. 이건 여야 모두 찬성한 정책이고, 청년 일자리에도 도움이 된다.”

―‘낙하산’ 논란 등 잡음 많은 국립예술단체 예술감독 선임방식은 어떻게.
“현 예술감독 선임제도는 취임 직후부터 역량을 펼치는 데 한계가 있다. 실제 공연 1∼2년 전부터 공연기획이 이루어지는 공연제작의 특성을 고려해 ‘예술감독 사전선임제도’를 도입한다. 또 지금까지는 거의 추천 방식, 네트워크 방식이었다. 업계 관계자끼리 정하고, 장관은 승인만 하는 구조였다. 그런 구조에서는 실력 있는 사람이 올라오기 어렵다. 그래서 완전 공개 오디션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실기 테스트와 프레젠테이션, 대규모 심사위원단 평가를 도입하고, 필요하면 유튜브 생중계까지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누구나 검증 가능한 방식이어야 국립예술단체의 질이 높아진다. 일단 인선 제도를 개선하고 뽑는 건 다음 정부에서 하도록 할 계획이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연임됐는데, 문체부와 축구협회 간 갈등 해소는 진전이 있는가.
“정 회장을 만나 ‘문체부 감사에서 지적된 내용에 대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 당신 말 한마디로 다 하지 말고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지켜달라’고 했다. 정 회장이 ‘(지적 사항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했고, 축구협회도 조직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더라.”
―예산 지원 구조를 바꾼 이유는.
“그동안 문화·체육계는 협회나 단체를 통한 간접 지원이 많았다. 이 구조에서는 협회와 단체 중심으로 권력이 생기고, 지원금이 왜곡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직접 지원 방식을 강화했다. (예컨대) 출판협회를 거치지 않고 출판사에 직접 지원하게 했고, 대한체육회 대신 시·도체육회나 연맹(체육 종목별 단체)에 직접 예산을 배분하도록 바꿨는데 현장 만족도가 높다. 진정한 자율성과 책임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 체육계나 예술계의 정치화가 심각해서 공정하고 자율적인 지원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예산 지원 구조를 직접화하고, 협회 권한을 줄이는 쪽으로 개혁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소회는.
“당시 전혀 내용을 공유받지 못했고 계엄 이후에야 소식을 들었다. 왜 안 불렀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정말 세게 반대했을 거다. 12·12 사태도 겪어본 사람으로서 (윤 전 대통령이) 유연하게 풀 수 있는 문제를 그렇게 극단적으로 갈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1년 가까이 열심히 준비한 정책과 비전을 결실로 옮기려던 시점에 이런 일이 터져 진도를 더 못 나간 것도 참 아쉽다.”
―임기 종료 후 계획은. 무대에 다시 오를 생각도 있나.
“지역 기반 예술지원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광역단위에서 지역 예술단체를 지원·조정하는 중간조직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충북 단양에 국립국악원이 생긴다고 해도, 단양군만으로 운영할 수 없다. 충북도 차원에서 운영 지원 체계를 만드는 중간조직이 필요하다. 이런 시스템을 제대로 정착시켜보고 싶다. 꼭 무대에 서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내가 직접 출연하는 것보다 후배들이 무대에 서고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한다. 내가 출연하면 여러 사람이 불편할 것도 같고.(웃음)”
유인촌 장관은…
●1951년 전북 완주 출생 ●한성고 ●중앙대 연극영화학과·대학원 연극학 석사 ●MBC 6기 공채탤런트 ●극단 유 대표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제44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예술의전당 이사장 ●KBS연기대상 ●백상예술대상·동아연극 연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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