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를 인선할 때 일이다.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방에서 모 정당의 재판관 후보 면접이 비공개로 이뤄졌다. 면접을 본 사람 중에는 고위급 판사들도 있었다. 알려준 방 호수로 들어가니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 등 몇 사람이 앉아 있었고, 1시간 가까이 여러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국회 몫 재판관 세 자리가 공석이 된 지난해 가을, 일부 판사들 사이에선 물밑 술렁임이 있었다. 한 법관은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인연이 있는 법조인 출신 의원에게 전화해 자신이 재판관 자리에 뜻이 있으니 도와 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재판관 3명 중 2명의 추천권을 자신들이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하던 시점이었다. 또 다른 법관은 법원에 있었던 다른 선배들로부터 “너도 좀 뛰어야 하는 것 아니냐. 왜 이렇게 가만히 있느냐”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과거 재판관 자리는 소위 ‘잘 나가는 판사들’ 사이에서 대법관이 못 되면 가는 차선책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두 차례의 대통령 파면 결정을 고리로 헌재 위상에 대한 국민 인식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에 걸맞게 헌재의 인적 구성에 대한 국민 신임 역시 함께 올라가고 있는가에 대해선 다들 고개를 내젓는다.
재판관 9인은 대통령 지명 3명, 국회 선출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으로 구성된다. 헌법학자인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를 두고 “세계에서 보기 어려운 ‘나눠먹기’식”이라고 평했다. 그는 “헌재가 행사하는 막강한 헌법재판권에 비해 국민적 신임은 매우 취약한 구성 방식”이라며 “대법원의 구성 방식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대법관 13인의 경우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 대통령의 임명 단계를 거쳐야 한다. 대법원장 제청권과 관련해서도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꾸려 공개 추천을 받은 뒤 심사를 거쳐 3배수 이상을 대법원장에게 후보로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이 중 한 명을 제청하도록 하는 보완 절차를 뒀다.
반면 헌재법은 국회 내부에서 추천 절차를 어떻게 운영할지 세부적으로 정해 놓지 않았다. 후보군 선정 과정 역시 깜깜이다. 그렇다 보니 특정 정당이 자체적으로 판사를 호텔방으로 불러 비공식 면접을 보고, 재판관에 뜻이 있는 판사들은 특정 정당에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려고 줄을 서는 모양새가 벌어지고 있다.
국회는 그간 양당 구조일 경우 여야가 재판관 1명씩을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협의를 통해 정하는 것을 일종의 관행으로 해왔다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다. 다수당인 민주당은 지난해 교섭단체 요건을 충족한 제3당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재판관 세 자리 중 두 자리를 가져갔고,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제기된 마은혁·정계선 재판관을 그 자리에 앉혔다. 정파별 땅따먹기 게임과 다를 바 없다.
민주당은 최근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재판관을 지명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국회나 대법원장이 추천하거나 지명한 재판관은 7일이 지나면 자동 임명되도록 하는 내용의 헌재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는 “헌법에 없는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를 (하위법인) 법률로 제한하고 있다”면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는 이 같은 헌재법 개정에 앞서 ‘국회의 재판관 3인 선출권’을 명시한 헌법정신을 제대로 지켜왔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다수당에 의한 정당별 재판관 나눠먹기는 필연적으로 ‘특정 정파만을 위한 재판관’이란 오명을 덧씌울 수밖에 없다. 이는 헌재에 대한 모욕일뿐만 아니라 헌법 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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