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 정부부터 논의된 것이다.”
지난해 8월, 지금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에 대해 한 말이다. 당시 교육계에선 야당을 중심으로 윤석열정부의 AI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았던 상황. 교육부 장관이나 정권이 바뀌면 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이런 우려에 이 권한대행은 ‘AI 기술을 공교육에 활용하는 것은 문재인정부부터 이어져 온 기조’라고 강조했다. AI 활용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란 얘기이지만, 이면엔 정부가 하는 일에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야당에 대한 원망도 깔려 있었을 것이다.

AI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야당의 비판은 크게 ①속도가 너무 빠르다 ②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로 압축된다. ①은 교육계 전반의 우려이기도 했다. 교육부는 2023년 2월 ‘2025년부터 초·중·고에 AI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는데, 2년 만에 개발·심사 등을 거쳐 모든 학교에 도입한다는 것이어서 ‘속도전’ 비판이 거셌다. 교육부는 결국 지난해 11월 비판을 수용해 ‘2025년엔 원하는 학교부터 도입하고 과목도 줄이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②에 대해선 과거 문재인정부가 공교육의 AI 활용을 언급한 자료를 찾아봤다. 2020년 11월 교육부가 발표한 ‘인공지능시대 교육정책방향과 핵심과제’는 ‘AI는 개인별 맞춤형 학습지원을 위해 널리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교사가 AI를 수업 보조로 활용하면 공교육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AI 기반 국어·수학·영어 교과 학습을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전 정부도 공교육에서의 AI 도입 효과성 자체에는 공감했던 것이다.
AI 디지털교과서의 속도가 조절된 만큼 효과성을 살피려면 우선 도입된 학교를 지켜보는 게 수순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무조건 반대’ 모드다. 차분히 효과를 검증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디지털기기를 수업에 활용하는 것은 학교에선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초·중·고엔 AI 디지털교과서 개발 전부터 디지털기기가 상당수 도입됐다. 교육감들이 ‘디지털 기반 교육’을 강조하며 수업에 활용할 것을 권유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디지털교과서 도입률은 보수 성향 교육감이 있는 대구는 98%, 진보 성향 교육감이 있는 세종은 9%에 그치는 등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차이가 크다. 보수 교육감이 높은 도입률로 화답하는 것도, 진보 교육감이 어깃장을 놓는 것도 부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모두 정책 자체보다 ‘정권’을 보고 효과를 판단하고 있어서다.
윤석열정부가 갑작스레 정권을 마무리하게 되면서 AI 디지털교과서는 향방을 알기 어렵게 됐다. 정권이 바뀐다면 폐기 수순에 접어들 가능성도 크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공약에도 ‘디지털 교육 시스템 강화, AI 교과 콘텐츠 개발’이 들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추후 이와 유사한 자신들만의 AI 콘텐츠를 다시 들고나올 것으로 보인다. ‘백년지대계’여야 할 교육 정책이 ‘삼년지대계’로 춤을 추는 꼴이다.
적어도 교육만큼은 ‘누가’ 만들었는지보다 ‘어떤 것’을 만들었는지를 보고, 정책 그 자체로 생각할 수 없을까. 어느 정부가 되든, 전 정부 정책을 청산하고 자신의 ‘○○표’ 정책을 만드는 데 골몰하기보다 전 정부의 정책을 차분히 검증하고 이어가길 바란다. 교육 정책이 흔들리는 사이 혼란과 피로는 학교, 학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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