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신화, 평화와 공존을 만들다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는 오래전부터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고대 한국 사회에서는 우주와 인간, 자연을 연결하는 다양한 신화와 신에게 바치는 예절 제의(祭儀)가 발달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한국인의 정신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민족 건국신화와 천손 사상
한민족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는 환웅이 하늘의 뜻을 받아 인간 세상에 내려와 태백산(지금의 백두산) 신단수(神檀樹) 아래 신시(神市)를 세우고, 인간에게 농업과 의학, 법률을 가르친 뒤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후 환웅과 웅녀(곰이 변한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우며 한민족의 시조가 된다.
단군신화에서 강조되는 천손(天孫) 사상은 ‘한민족은 하늘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믿음을 담고 있다. 하늘부모님(환인)의 아들 환웅은 환인에게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3000의 무리를 이끌고 만주평원과 한반도를 잇는 백두산의 신단수 아래에 신시를 세웠다는 것이다. 신화 속에서 환웅은 하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농업, 의학, 법률 외에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이념, 즉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실천했다. 이는 인류 보편의 메시지이자 모든 인류가 바라는 하늘부모님의 뜻이다.
고조선의 시조 단군은 홍익인간뿐 아니라, 세상을 이치로 교화한다는 재세이화(在世理化), 도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는 이도여치(以道與治), 밝은 빛으로 세상을 이끄는 광명이세(光明理世)의 이념도 주창함으로써 평화와 정의, 도덕적 이상을 강조하며 세상을 다스렸다. 단순한 신화적 이야기라기보다, 한민족의 정신적 지표와 국가적 가치관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단군신화가 남성 중심이라면, 마고 신화와 바리공주 신화는 여성 중심이다. 마고 신화는 주로 제주 지역에서 구전 설화로 전해지는데, 이 신화에서 마고 할미는 우주와 생명을 창조한 여신으로, 신성한 힘을 무당에게 전수하고 승천했다고 전해진다. 할미(할머니)는 크다는 뜻을 지닌 우리말 ‘한’과 생명의 뿌리를 뜻하는 ‘어머니’를 합쳐서 만든 말로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하늘어머니가 계셨음을 묘사해주고 있다.
여성신화는 하늘부모님 신앙을 보여준다
‘바리공주 신화’는 주로 전라·충청 지방에서 설화로 전승돼 왔는데, 바리공주는 신화 속 한 왕의 일곱 번째 공주로 태어났지만 버려져 한 노부부의 양딸로 자랐다. 그래서 바리공주 또는 바리데기 공주는 ‘버린 아이’라는 뜻이다. 구전에 따르면 어느 날 왕과 왕비가 불치병에 걸리자, 저승의 생명수를 마시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여섯 공주는 모두 저승에 가기를 거부했지만, 바리공주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떠나 생명수를 구해 부모를 살렸다. 이후 바리공주는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무당의 시조로 여겨진다. 두 신화 모두 여성의 창조적 힘과 생명력을 강조하고 있다.
한민족 신화는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통해 하늘부모님 신앙의 구조를 담고 있으며, 남성과 여성 신성의 조화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신화적 상징에 그치지 않고, 한민족이 천지와 인간, 남성과 여성, 생명과 자연의 균형을 중시하며 살아온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나아가 이러한 신앙 구조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하는 문화적 기반이 되었으며, 세대를 거치며 한민족의 정신적 뿌리와 도덕적 이상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고대 한민족 사회에서는 하늘부모님께 드리는 제사의식인 천제(天祭) 문화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결속되었다. 햇곡식과 맏 가축을 바치는 제사, 정화수를 바치는 의식 등은 하늘에 대한 경외심과 감사의 표현이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하늘과 연결되고, 마을과 나라 단위로 사회적 유대가 강화되었다. 또한 천문학적 관찰과 관련된 첨성대와 같은 시설은 단순히 하늘의 별과 행성을 관측하기 위한 과학적 목적뿐 아니라, 하늘 뜻을 이해하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살피려는 종교적·철학적 열망을 보여준다.
제의와 공동체 문화 ‘한마음’
한민족은 천손 사상을 바탕으로 같은 뿌리와 마음의 연결, 즉 ‘한마음’을 중시해 왔다. 한국 사회와 우리 민족문화를 통합적으로 성찰한 종교 사상가 함석헌은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 사람은 한 사람이요, 우리나라는 한 나라요, 우리 문화는 한 문화다.” 이는 공동체 의식과 서로를 배려하는 정신으로 발전했고, 평화와 공존을 지향하는 민족성으로 이어졌음을 뜻한다. 고대 신화와 제의, 공동체 문화 속에서 한민족은 하늘과 인간, 자연이 하나로 연결된 우주적 질서를 체험하며 살아왔다.
한민족의 고대 신앙은 단순한 신화를 넘어 문화와 역사, 사회적 가치관의 근간이 되었다. 하늘부모님 신앙은 인간과 자연, 공동체를 연결하는 중심적 축으로 작용했고, 이를 통해 평화와 공존, 공동체 정신을 실천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단군과 여성신화를 통해 드러난 하늘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제의와 관찰을 통한 자연과 우주의 이해는 오늘날 한국인의 정신적 뿌리이자 문화적 자산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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