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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늘날 누가 정교일치(政敎一致)를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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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18 16:50:51 수정 : 2025-09-18 2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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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언론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공소장에 “정교일치 이념 실현과 통일교 이권 확대를 위해 통일교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후보를 물색했다”고 적었다. 이런 내용이 알려진 후 각종 기사에 통일교가 반민주주의적 정교일치를 추구한다는 것이 마치 기정사실처럼 회자되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1세기에 정교일치라니. 자극적인 단어 선택 하나가 갖는 파장이 이렇게 클 수 있음에 새삼 놀라게 된다.

 

정교일치(政敎一致)란 보통 정치권력과 종교 권위가 하나로 통합되어 작동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즉, 국가의 법, 제도, 정책 등이 종교적 권위에서 비롯된 교리나 원리에 의해 움직이거나 종교와 정치 영역이 서로 분리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사시대의 판관처럼 고대 다수 문명에서는 종교와 정치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고, 로마의 황제숭배와 같이 국가 권위와 종교적 신성성이 결합한 사례가 많았다. 로마 시대에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게 된 배경엔 그가 단순히 종교 지도자가 아닌 ‘유대인의 왕’이 되려 한다는 죄목이 있었다.

 

기독교의 예를 좀 더 살펴보자. 서기 313년 로마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기독교가 제국의 공적 이념이자 통합 원리가 되면서 기독교와 국가의 관계는 매우 복합적 양상을 띠게 된다. 오랜 중세시대를 거치며 십자가 전쟁과 같이 국가가 교회를 이용하기도 하고, 반대로 교황이 세속권력을 추구하며 국가를 규범화하려 하는 등, 교황과 왕의 상호협력과 긴장이 공존했다. ‘교회와 국가’(Church and State)라는 주제가 오늘날 기독교 정치신학의 한 연구 영역으로 이어져오고 있음은 이런 오랜 역사를 반영한다.

 

근대 이후 정교분리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원리로 자리 잡으면서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헌법에 담아 실천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교일치라는 말은 잘 쓰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부정적 뉘앙스로 들린다. 특정 종교가 정치권력과 결탁하면 민의가 중심인 민주주의 원칙이 훼손됨과 동시에 다른 종교의 자유가 침해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도 ‘기독교적 이상국가’라는 개념을 현대 사회의 맥락에서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경주한다. 중세 기독교 국가에서의 교황과 왕의 관계를 현대에 복원하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물론 교회와 국가를 각각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의 영역으로 보고, 교회만이 제공하는 구원의 은사가 담긴 ‘기독정신’(基督精神)을 세속 국가의 영역에 적용하려는 관점은 변함없다. 기독교는 기독정신으로 운영되는 국가의 이상을 시대를 초월하여 유지하면서도 변화하는 사회 맥락에서 그 실천 방안을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하려 한다.

 

여기서 기독교의 예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이것이 통일교의 이상국가론과 매우 닮아있기 때문이다. 특검의 공소장에는 통일교가 “참부모 (한학자)의 뜻이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려 한다고 적시되어 있다. 이 말이 맞다. 기독교가 기독정신을 기반으로 한 국가를 지향하는 것처럼 통일교도 참부모 정신을 반영한 국가를 실현하고자 한다. 참부모의 뜻이 실현되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통일교의 종교적 이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에서 마치 고대나 중세시대의 정교일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부적절하다. 통일교 교리에서 참부모라는 개념은 통일교가 믿는 신인 하늘부모님의 심정과 일체를 이룬 이상적 남녀가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룰 때 실현된다. 통일교는 인간이 자신의 삶 속에서 참부모 이상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종교다. 참부모는 하늘부모님의 한없는 사랑을 삶에서 실천하는 사람으로, 정치, 경제 등 그 어떤 영역에서도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면서도 모든 행위의 목적을 사랑의 실현에 두는 사람이다.

 

정치지도자들이 만일 이러한 참부모 정신을 발휘하여 부모가 자식을 두루 살피는 것처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빈부격차를 줄이는 정책을 수행하며, 자신을 지지하는 일부 계층의 뜻만 반영하는 것이 아닌 모든 국민의 뜻을 반영하려는 진정한 대의정치를 펼친다면 어떠한 세상이 펼쳐질까? 너무나 이상적인가? 어쨌든 그 이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의 참부모 사상이다. 참부모 정신 안에는 정치, 경제, 윤리 영역에서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공생(共生)·공영(共榮)·공의(共義)의 정신이 담겨 있다. 이를 다 소개할 순 없으나, 이러한 개념, 정신, 사상을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언제나 새롭게 실현하려고 하는, 즉 “참부모의 뜻이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 대부분 현대종교가 종교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 갖는 시각은 이와 대동소이하다. 불교가 정치지도자에게 불심(佛心)으로 나라를 다스리기를 권고할 때 이를 정교일치의 시도로 보는 사람은 없다. 지난 7월 9일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 7대 종교 지도자들과 간담회를 가질 때 참석한 종교인들은 모두 종교적 가치가 널리 사회에 확산되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통일교의 소위 ‘정교일치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통일교의 교리만 중세시대의 신정정치처럼 바라보는가? 통일교 교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단순히 어떤 문장을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여 통일교가 특정 정치세력과 결탁해 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판단은 너무나 단선(單線)적 이해일 뿐만 아니라 편협한 흑백논리에 가깝다. 이런 시각이 지나치면 신종교에 대한 종교 탄압으로 비춰질 수 있다.

 

통일교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일생을 통해 수많은 전·현직 국가수반, 정치지도자들을 만나 하늘부모님의 뜻을 전했다. 고 문선명 총재는 1974년 당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곤경에 처한 닉슨 대통령을 만나 하늘의 뜻을 전하며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 진영을 수호해야 하는 그의 사명을 강조했다. 1991년에는 한학자 총재와 함께 북한 김일성 주석을 만나 그와 형제지정을 나누며 하나님주의를 외쳤다. 문선명 총재 성화 이후에도 한학자 총재는 세네갈, 니제르, 상투메프린시페 등 여러 나라의 국가 정상을 만났고, 그들에게 하늘섭리를 전하며 참부모 정신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당부했다.

 

이런 모습이 정교일치로 비판받아야 한다면 그 어떤 종교가 정교일치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21세기 오늘날 누가, 어떤 관점에서 정교일치를 말하는가? 그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깊게 성찰해보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황진수 선문대 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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