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 시장이 살얼음판이다. 어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달러당 1430원을 돌파하며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환 당국이 “시장의 쏠림 가능성을 경계한다”며 1년 6개월 만에 구두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잘나가던 주식시장도 1% 가까이 빠졌다. 한·미 관세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미·중 무역 갈등이 다시 불거진 탓이 크다. 외풍에 취약한 한국경제로서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환율은 위험수위에 다다른 지 오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달 10일까지 원·달러 환율 평균은 1412.2원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평균치(1394.97원)를 웃돈다. 이 기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가량 하락했는데 유독 원화가치만 크게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1500원 선까지 치솟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마저 팽배하다. 원화 약세 흐름이 오래 이어지면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물가불안과 내수위축도 부채질할 수 있다. 고환율이 수출에 긍정적일 수 있지만, 미국발 관세전쟁 탓에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환율은 국가의 위상과 신뢰를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다. 자칫 달러 부족사태가 벌어지면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외환위기로 번질 수 있다. 비상한 경각심이 필요하다. 정부는 시장불안을 차단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달러 수급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환율 급변동 때 적절한 안정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소·중견기업 지원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환율 불안의 진앙은 지난 7월 말 한·미 관세협상 타결 이후 3개월째 난항을 겪고 있는 3500억달러 대미 투자문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어마어마한 돈을 선불, 현금으로 내라고 겁박하는데 우리가 수용하기는 불가능하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어제 “미국과의 관세협상 결론을 빨리 내리겠다”고 했고, 조현 외교부 장관도 “미 측에서 지금 새로운 대안을 들고 나와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시간에 쫓겨 섣부른 양보로 국익을 훼손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일이다. 미국도 한국경제가 파탄에 빠져서는 대미 투자도 물 건너간다는 걸 모를 리 없다. 정부는 미 측에 우리 경제여건과 외환보유액, 재정 상황 등 한계를 설득해 총투자금액을 최대한 줄이거나 대출·보증 비중을 높여야 한다. 통화스와프 등 안전장치도 관철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