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현장에서 “스펙은 직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가운데, 정작 채용 과정에서는 여전히 출신 학교를 비롯한 각종 스펙이 평가 기준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과 채용 시스템의 괴리가 청년들을 불필요한 ‘스펙 레이스’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재단법인 교육의봄이 재직자·인사담당자·청년 구직자 총 18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재직자 62.7%는 출신 학교가 직무 수행에 불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인사담당자의 74.3%는 여전히 채용 과정에서 출신 학교를 참고하거나 반영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이중적 구조 속에서 구직자의 82.8%는 출신 학교로 인해 차별을 경험하거나 차별받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재직자와 인사담당자의 온도차는 ‘인재가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역량’과 ‘채용 단계에서의 평가 관행’이 다르게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직자들은 “실제 일할 때는 학벌보다 경험과 적응력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기업의 채용 시스템은 여전히 학력 필터링과 서류 전형 중심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출신 학교 차별이나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답한 청년 구직자들의 반응은 더욱 극적이다. 1학년의 39.5%, 2학년의 무려 80% 가 ‘편입을 준비 중이거나 준비할 예정’이라고 응답했다.
취업 시장에서의 학벌 인식이 낮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대학 재학 초기에부터 ‘학벌 개선’을 위한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학벌 대신 직무 역량을 보겠다는 담론이 확산됐지만, 채용 공고와 서류전형의 실제 구조가 달라지지 않으면서 청년들이 다시 ‘학벌로 돌아가는’ 역주행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교육의봄은 현장에서 자주 요구되는 12개 스펙을 기준으로 직무 수행·채용 필요성을 조사했다.
직무 관련 경험(71%)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펙이 실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구직자는 아래 다섯 가지 항목에서 50%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직무 관련 경험 (75.9%) △직무 관련 자격증 (69.3%) △학점 (68.9%) △출신 학교 (55.7%) △회화 능력 (53.0%)
즉, 실무자가 보기엔 대부분 중요하지 않지만, 구직자는 기업의 평가 기준을 의식해 훨씬 많은 스펙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해외 경험·기타 자격증·수상경력·추가 교육·봉사활동·어학점수 등 6개 항목은 재직자와 구직자 모두 필요성이 낮다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구직자의 80% 이상이 이 스펙들을 이미 준비했거나 준비 중이거나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필요성을 낮게 평가하면서도 준비는 하는 ‘역설’이 생기는 이유는, 기업들이 여전히 입사지원서 항목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준비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어쩔 수 없다”는 불안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취업을 준비 중인 졸업생·졸업유예생 392명에게 취업 준비 상태를 묻자 31.7%는 ‘충분하지 않다’고 응답, 충분하다고 답한 그룹(68.3%)에서도 약 20%가 12개 스펙을 모두 준비했다고 답했다.
또한 7개 이상 스펙을 준비한 비율도 38%로 높게 나타났다. ‘스펙의 실효성은 낮지만 준비는 더 많이 하는’ 아이러니한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결과가 한국 채용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직무 중심 채용이 확산됐다는 구호와 달리, 실제로는 스펙 중심 필터링이 여전한 현실이다.
스펙과 직무역량 간의 불일치로 인해 청년들의 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문제다.
학벌 중심 채용이 청년의 편입·재수 경쟁을 촉발하는 부작용이 있다. 특히 청년층의 취업 준비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사회·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는 점도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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