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 폐지 후, 내신중심 선발 한계
명문대 학생들 초등수학도 못 풀어
UCSD, 신입생 8%가 중학교 수준
전공 중도포기·졸업지연 부작용도
아이비리그, 성적 제출 의무 부활
원점수만으로 줄세우기 방식 탈피
학교·지역·경제 배경 고려해 평가
성적 형평성·불공정 논란은 ‘숙제’
수학능력시험이 사라진 대학 입시는 더 공정하고 합리적일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대면 시험 시행이 불가했던 2020년 미국 주요 대학들은 대학입학자격시험(SAT)과 대학입학학력고사(ACT) 점수 제출을 입학 요건에서 제외하거나 선택 사항으로 전환했다.
시험이 지원자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비판도 일부 반영한 조치였다. 제도 시행 이후 수년이 지난 현재, 각 대학은 학생들을 일괄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는 표준화 시험 성적을 배제한 입시가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점검하면서 개선책을 고민하고 있다.
◆‘미국판 수능’ 없는 입시 그 후
노벨상 수상자를 27명 배출한 미국 공립 명문대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캠퍼스(UCSD) 내부 교수회·행정부 합동 기구인 학부 입학·학업준비 검토 실무단(SAWG)이 최근 공개한 보고서는 미국 대학들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UCSD 2025학년도 신입생 7799명 중 665명(약 8%)은 수학 과목에서 중학교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 것으로 평가됐다. UCSD는 표준화 시험 점수를 입시에 일절 반영하지 않고 있는데, 보고서는 ‘테스트 블라인드’ 입시가 학생들의 실제 학업 준비도를 충분히 가려내지 못하고 지적하고 있다.
이 대학은 학력미달 학생을 위한 수학 보충 수업반을 운영하고 있지만 졸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기초 수학이 부족해 1학년 때 미적분 과목에 진입하지 못한 학생들은 전공 유지율이 낮고 졸업까지 걸리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공과대학의 경우 “대학에서 초·중등 수준 수학을 다시 가르치는 ‘수학 2’ 보충수업을 이수한 학생 가운데 공학 전공을 성공적으로 마친 사례는 거의 없다”는 평가가 보고서에 명시됐다. SAWG는 이런 결과에 대해 “입학 단계에서 학업 준비도가 충분하지 않은 학생을 대규모로 수용하면 해당 학생들에게도 긍정적인 성과를 보장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이 같은 결과가 단순한 교육 수준 저하 논란에 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형평성을 이유로 입학 기회를 넓힌 정책이 학업 지속과 졸업까지 이어지지 않을 경우 해당 학생들이 학위를 취득하지 못한 채 학자금 대출 부담만 안고 대학을 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입시 제도가 지향했던 형평성의 목적과도 배치된다. 이에 따라 실무단 다수는 전체 캘리포니아대학교 차원에서 표준화 시험 입학 요건의 재도입 가능성을 다시 검토할 것을 공식적으로 제안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UCSD 보고서는 시험을 배제한 입시가 입학 기회의 형평성에는 기여했을지라도 학생들이 학위 취득이라는 최종 성과에 도달했는지까지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파키스탄 사르고다대 교육학과 연구진이 2019년 발표한 연구에서도 고등교육의 형평성을 ‘접근·참여·성과’로 구분해 분석하며, 입학 기회만으로는 형평성 정책의 효과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의무’로 유턴하는 아이비리그
SAT·ACT 성적 제출 선택제로 전환했던 대학들은 재검토에 들어갔다. 신입생 학력 저하 등을 겪으며 ‘표준화 시험 성적의 대체 수단이 충분히 신뢰할 만했는가’라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대학 측은 고교 내신과 에세이, 추천서 등 정성평가 요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고교별 평가 기준 차이나 성적 인플레이션,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기소개서 작성 등 새로운 왜곡 요인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결국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는 코로나19 기간 시험 선택제를 운영하다가 2022년 시험 성적 제출 의무를 부활시키면서 “우리 연구 결과, 표준화 시험은 모든 지원자의 학업 준비도를 더 잘 평가하게 해줄 뿐 아니라 고급 과목이나 각종 대외활동 기회가 부족한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 학생을 찾아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시험 의무화가 시험 선택제보다 더 공정하고 투명하다”고 설명했다.
아이비리그에 속한 다트머스대도 2024년부터 시험 성적 제출 의무를 다시 도입했다. 다트머스대 연구진이 2017∼2018학년도(시험 의무)와 2021∼2022학년도(시험 선택제) 입시 자료를 비교·분석한 결과, 시험 선택제가 “저소득층·1세대 대학생(부모 세대 중 4년제 대학 진학자가 없는 학생) 지원자에게 의도치 않은 불이익을 줬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평균 점수보다 다소 낮더라도 자신의 환경을 고려하면 ‘좋은 성적’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은 저소득층 수험생들이 시험 성적을 제출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고, 그 결과 이런 지원자들의 합격 가능성이 오히려 낮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하버드대와 예일대를 포함한 아이비리그 대학 8곳 가운데 현재 컬럼비아대를 제외한 7곳이 표준화 시험 점수 제출을 다시 요구하고 있다.
◆표준화 시험,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시험 성적을 다시 입시에 반영하는 것만으로 형평성 논란이 자동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시험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하버드대 연구 조직 ‘오퍼튜니티 인사이트’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아이비리그와 스탠퍼드·MIT·시카고대 등 이른바 ‘아이비 플러스’ 대학들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시험 점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저소득층·지방 공립고 출신의 우수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같은 점수라도 지원자의 가정 소득·재학 고교 수준을 고려해 점수의 맥락을 해석하는 ‘콘텍스트 입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미시간대 교육대학원의 마이클 배스티도 부교수가 수행한 연구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는 입학사정관들에게 학생의 시험 점수만 보여주는 대신, 같은 학교·비슷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또래집단에서 그 점수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까지 함께 제시했을 때 저소득층 학생들에 대한 합격 추천이 유의미하게 늘어났다고 보고했다. 원점수만으로 줄 세우는 방식보다 점수를 경제·사회적 맥락과 함께 읽을 때 공정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시험 점수를 사회·경제적 맥락과 함께 해석하자는 접근 역시 표준화 시험이 지닌 구조적 한계를 한 번에 해소하는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시험 점수에 학생의 가정환경이나 학교 자원 정보를 덧붙여 보정하더라도, 사교육 접근성이나 반복 응시 기회에서 비롯되는 격차 자체는 이미 점수에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표준화 시험에 불리한 환경 요인을 함께 제시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SAT를 운영하는 칼리지보드는 2016년 학생이 처한 학교·동네의 빈곤율, 범죄율 등을 단일 수치로 표시하는 ‘역경 지수’를 도입했다. 그러나 학생의 경험을 숫자로 단순화한다는 비판이 커지자 해당 지수는 2019년 폐기됐다. 이후 칼리지보드는 학교·지역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시각화해 제공하는 ‘랜드스케이프’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인종·지리 정보 활용을 둘러싼 규제와 정치적 논란이 커지자 올해 9월 다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시험 점수와 학교·지역·경제적 배경 등을 함께 고려하려는 실험이 도입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다”며 “어떤 기준과 형식으로 제도 안에 녹여낼 것인지는 과제로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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