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9월 2일 오전 일본 도쿄 앞바다. 정박해 있는 미 해군 전함 미주리 함상에서 미국, 영국, 중국 등 연합국에 대한 일본의 항복 문서 조인식이 열렸다. 패전국 일본을 대표해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외무상이 참석했다. 그는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과 지팡이에 의존하는 장애인이었다. 측근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전함 위로 올라간 다음 절뚝거리며 문서가 놓인 책상까지 이동했다. 항복 문서 서명이 이뤄지는 동안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미군 원수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시게미쓰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외교관 시게미쓰는 1932년 4월 29일 당시 주중 일본 공사 자격으로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 있었다. 그곳에선 일본 국왕 히로히토(裕仁)의 생일을 축하하는 기념식이 개최됐다. 이는 1932년 초 상하이 사변을 일으킨 일본군이 중국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해 상하이를 점령한 것을 자축하는 의미도 있었다. 그런데 행사 도중에 느닷없이 폭발이 일어나 현지 주둔 일본군 사령관을 비롯한 장성 여럿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시게미쓰는 목숨을 건졌으나 크게 다친 오른쪽 다리를 잘라야만 했다. 폭탄을 던진 이는 바로 매헌 윤봉길(1908∼1932) 의사였다.
이 소식을 접한 장제스(蔣介石) 중국 국민당 주석은 윤 의사를 향해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한 청년이 해냈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후 중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연합국 정상회의가 열렸다. 장제스도 연합국 일원인 중국을 대표해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에게 한국의 독립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했다. 덕분에 카이로 선언에는 ‘적절한 시기에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한다’라는 문구가 포함될 수 있었다.
4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올해 마지막인 ‘12월의 호국 인물’로 선정된 윤 의사를 기리는 현양 행사가 열렸다. 윤 의사의 친손녀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윤주경 FITI시험연구원장이 유족 대표로 기념식을 지켰다. 그는 “광복 80주년에 할아버지가 호국 인물로 선정돼 더욱 뜻깊다”며 “할아버지는 국가에게 무언가를 바라기보다는 스스로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고 직접 실천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국가와 이웃을 위해 작은 것이라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참으로 값진 교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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